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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Dylan: Shadows in the Night

노인들의 눈에는 빛이 있는 법

젊은이들의 눈에는 불꽃이 있지만, 노인들의 눈에는 빛이 있는 법.
-에밀 아자르, ‘솔로몬 왕의 고뇌’

앨범 재킷만 보면 완전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발매한 재즈 음반 같다. 즉각적으로 John Coltrane의 [Blue Train]이 떠오르기도 한다(어떤 점에서는 Bruce Springsteen의 [The River]를 닮기도 했다). 이번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간 할 이야기는 충분히 다 하지 않았을까? 히스토리가 기니 뚝 잘라 후반전만 언급해보자. [Time Out of Mind], [Love and Theft], [Modern Times]로 연결되는 이른바 3부작(trilogy)을 통해서는 변화하는 근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음악여정을 결산하는 것은 물론 락큰롤의 기원을 탐사했었고(물론 세 음반의 색채는 완전히 다르다), 2009년에는 서정성 물씬한 [Together Through Life]와 캐롤 음반 [Christmas in the Heart]를 연이어 공개하며 식지 않은 창작력을 과시했다. 2012년 발표했던 [Tempest]에서는 다시 힘을 바짝 넣고는, 동시대보다는 과거로 눈을 돌렸다. 이제 인생사의 음양에 대해 꿰뚫어 볼 정도가 된 걸까. 타이타닉호의 비극에 대한 송가(‘Tempest’)와 셰익스피어의 희극 제목(‘템페스트’)이 절묘하게 교차한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이번 음반 이야기를 해보자. 통산 스튜디오 36번째 음반이 되는 [Shadows in the Night]는 그 일련의 음반 뒤를 잇는 작품이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카드는 Frank Sinatra다. 제목은 아마도 Frank의 음반 [Strangers in the Night]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모든 곡들은 Frank의 전성기 시절 녹음되었던 곡에 대한 재해석이고, 무려 23곡이 녹음되었다고 하는데 최종적으로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곡만이 추려졌다. 첫 곡 ‘I’m a Fool to Want You’로 문을 열었다. 아, 역시 다르다. Frank의 도시적 고독함과도 다르고,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버전인 Billie Holiday의 자기파멸과도 다르다. Dylan의 해석은 그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세월에 대해 관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제야 이 노래를 건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듯, 듣는 사람이 괴로워서 몸부림치도록 하는 Billie의 버전과는 방향성 자체를 반대로 설정했다. Billie가 고통에 못 이겨 노래와 하나가 되었다면, Dylan은 노래를 부르지만, 오히려 노래와 거리를 살짝 둔다. 뭐가 더 나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켜가 어느 정도 쌓여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건 정말인 것 같다. 다음 곡 ‘The Night We Call It a Day’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Frank가 베일에 싸인 우수로 곡을 지배했다면, 그리고 Diana Krall이 보다 미끈한 언어로 소구했다면, Dylan의 버전은 마치 지나가는 가객을 잠깐 초빙해 한 소절 듣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음악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기성세대에겐 Yves Montand이 부른 샹송으로 유명한 ‘Autumn Leaves’가 시작하는 순간, 이미 처음 품었던 의심은 사라지고 있었다. Yves의 멜랑콜리를 저 편에서 노려보기라도 하듯, 그리고 Frank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의 이유를 묻기라도 하듯, Dylan은 단출한 배경 아래에서 굉장히 칙칙하고 퍽퍽한 해석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미 영원의 날을 살고 오기라도 한 듯한 이 노인의 해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길을 잡아끌고, 귀를 잡아당긴다. ‘Why Try to Change Me Now’가 흘러가면 심지어 약간의 괴팍함마저도 조금 더 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어쩌면 그건 그냥 굴곡 많았던 하나의 인생 스토리로 읽힐지도 모른다. ‘Where Are You?’의 심드렁한 읊조림과 ‘What’ll I Do’의 회한에 이르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트랙 ‘That Lucky Old Sun’에 오면 노인은 종교적 구원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 강을 보여주시고, 나를 건너게 하시어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하시길… 저 오래된 행운의 햇살처럼, 그저 천국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할 일을 남겨주지 마소서.” Frank의 입을 빌려 우회하는 것 같더니, 결국은 자신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정말 그의 결말처럼 현실의 이 모든 복마전이 일순간 사라질 것이라 믿지는 않고, 그 정도로 순진하지도 못하지만, 정념과 정열의 구간을 지나쳐 이제 경지에 오른 어느 노가수의 노래에서 뭐라고 말하지 못할 작은 희망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있다. 노인들의 눈에는 빛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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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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