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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knagar: Winter Thrice

블랙메탈 영웅들이 만든 고품격 프로그레시브 메탈?

초반에는 포크적인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Borknagar가 현재의 바이킹메탈에 가까운 사운드의 단초를 보여주기 시작한 건 Vintersorg가 마이크를 잡으면서부터였다. Vintersorg는 Borknagar 전부터 이미 솔로 활동과 Otyg, Havayoth 등을 통해 개성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보컬리스트임이 알려져 있었으며(Vintersorg의 보컬 때문에 활동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의 음악들이 모두 비슷하게 들릴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꽤 다양한 모습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기반을 포크/바이킹메탈에 두고 있던 인물이었다. 덕분에 Borknagar는 (적어도) [The Archaic Course]부터는 확실히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의 블랙메탈을 연주했지만, Vintersorg가 합류한 [Empiricism]부터는 프로그레시브에 포크 바이브를 강하게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 밴드(는 물론 ‘올스타 밴드’이긴 했지만)가 동향의 다른 밴드들보다 확실히 돋보였던 부분은 특히 보컬에 있었다. 밴드의 중심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인물들은 데뷔작과 [The Olden Domain]에서는 Garm, [The Archaic Course]와 [Quintessence]에서는 ICS Vortex, 그 이후부터는 Vintersorg였고, Garm과 ICS Vortex는 밴드를 떠난 이후에도 심심찮게 목소리를 빌려주곤 했으며, 어쨌든 키보드가 제자리인지라 약간 가려지기도 했지만 Lars Nedland(Solefald의 Lazare)도 화려한 연주와 함께 Solefald에서의 위엄 있는 목소리를 보여주곤 했다. 밴드는 초기의 전형에 가까운 심포닉 블랙메탈에서 바이킹메탈의 영역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이전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분위기(‘Dauden’이나 ‘The Winterway’)보다는 호방한 바이킹 영웅의 목소리의 재현(‘Origin’, ‘For a Thousand Years to Come’)에 기울기 시작했고, 그래서 영웅의 목소리의 필요성을 좀 더 실감했는지도 모르겠다. [Urd]에서는 ICS Vortex가 다시 밴드에 합류했고, 밴드는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알아주는 프론트맨 세 명을 동시에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Winter Thrice]는 더하다. 정규 멤버는 아니지만 다시금 Garm이 목소리를 빌려 주었고, 그 외에도 Susperia, Chrome Division의 Athera가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Winter Thrice]는 블랙메탈… 뿐만이 아니라, 그간 발표된 어떤 메탈 앨범에 비교하더라도 인상적일 정도의 화려한 보컬을 들려준다. Lars Ledland와 ICS Vortex, Vintersorg는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예의 그 화려한 클린 보컬을 보여주고, 때로는 Garm이 여기에 끼어들어 흐름을 주도한다(유감스럽게도 Athera는 별로 하는 게 없어 보인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걸출한 여러 보컬리스트가 모두 한 앨범에서 등장하다보니 관건은 이 굵직한 목소리들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일 것이다. 고민의 결과는 앨범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Baard Kolstad의 드럼은 Leprous에서의 미니멀한 분위기에 영웅의 서사를 입히고, Lazare의 건반과 Oysterin G. Brun의 기타가 서사 위에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입혀내는 건 같지만, ‘Cold Runs the River’ 같은 Vintersorg의 곡과 ‘Panorama’ 같은 Lazare의 곡, ‘Terminus’ 같은 Garm의 곡은 확실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 앨범이 Borknagar의 이전작들보다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리 쉽지 않다. 앨범이 보여준 ‘다양한’ 양상들에도 불구하고, [Winter Thrice]는 확실히 Borknagar의 전작들만큼 역동적이지는 않다. 하긴 Borknagar는 아무래도 [Epic]부터는 ‘블랙메탈’이라는 말이 그리 잘 어울리는 밴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앨범만큼 Borknagar가 가지고 있던 ‘블랙메탈’의 면모가 자제된 앨범은 없었을 것이다. Vintersorg와 Lars Nedland, ICS Vortex, Garm은 (래스핑에도 일가견이 있지만)모두 탁월한 클린 보컬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그렇게 영웅의 목소리들을 집어넣다 보니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들까지 앨범에 담을 만한 여유는 없었겠지 싶다. 목소리들을 강조하다보니 (아마 의도적으로)거친 맛을 눌러버렸을 음질도 당황스럽진 않지만 아쉬움은 없지 않다. ‘Cold Runs the River’는 초창기의 어두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 곡에서 [Borknagar]나 [The Olden Domain]의 느낌을 찾을 이는 없을 것이다. 곡의 문제라기보다는 밴드의 지향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지 싶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 보자. Borknagar는 앞서 말했듯이 [Epic]부터는 ‘블랙메탈’이란 말이 어울리는 밴드는 아니었다. 차라리 그 때부터의 밴드의 음악은 오로지 노르웨이 출신들만이 할 수 있는 포크 바이브를 머금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컨벤션을 블랙메탈 영웅들을 앞세워서 품격 있게 다듬어낸 결과물, 을 이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절정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앨범 전체에 밴드의 품격이 묻어나는 건 확실하니까 말이다. 호오는 각자의 선택으로 맡겨준다. 다만, ‘Panorama’ 만큼은 아마도 12월 말에 따져보더라도 올해 나온 앨범들 중 가장 인상적일 순간일 것이다.

(3.5 / 5)
 

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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