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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lsea Wolfe: Abyss

어떤 혼종의 가능성

끝없는 ‘심연’으로 내려앉는다. 타이틀 ‘Abyss’를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층층이 구축한 소리의 벽(wall)이 두껍게 장막을 치고, 그 위를 일렉트로닉 드론들이 날아다닌다. 언제나 그랬듯, 장르에 대한 규정은 어렵다. 편의상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네오포크/다크웨이브/노이즈락/일렉트로니카 정도로 정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특정한 방에 기거하지 않는다. 고딕 메탈이나 둠 메탈에서 들을 법한 앳모스피어(atmosphere)가 깔리며, 디스토션 잔뜩 걸린 기타 사운드가 작렬할 때는 마치 “헤비메탈 네메시스”로 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떨 때는 Bjork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기괴한 음악의 주인공은 미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Chelsea Wolfe다. [Abyss]는 [Pain Is Beauty]를 잇는  정규 5집이다.

고딕 메탈 이야기를 꺼냈지만, Theatre of Tragedy나 The Gathering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컬의 결은 Portishead의 저 위대한 퇴폐주의자 Beth Gibbons에 더 가깝다. 그녀의 장기처럼 Chelsea Wolfe의 보컬엔 감동을 이끌어낸다기보다 청자를 순간적으로 “멍”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음반에 실린 헤비한 트랙 ‘Carrion Flowers’과 ‘Iron Moon’을 비롯해, 포스트락의 향기가 물씬 피어오르는 ‘Maw’ 등에서 쉽게 확인되는 바다. 시카고의 포스트락/포스트메탈 밴드 Russian Circles의 기타리스트 Mike Sullivan, Chelsea Wolfe와 그간 죽 작업해왔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 Ben Chisholm, 비올라와 보컬로 참여한 프리랜서 연주인 Ezra Buchla의 지원사격 속에 그녀는 가장 “밴드 지향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전작 [Pain Is Beauty]를 포함한 그 전 작품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때보다 ‘유기적으로 엮인 사운드’가 직조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여러 요소들이 다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다고 해서 좋은 음반이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멋진 작품이 배태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뛰어난 곡/시대의식/흐름을 선도하거나 바꿀만한 방향성 등등. 그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이 음반이 ‘걸작’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혀 주변을 곁눈질하지 않는 저 이단아적 태도(‘After the Fall’)와 Cocteau Twins의 작품에서나 만나보았던 고전적인 탐미주의(‘Simple Death’), 낭만주의에 기반한 고스(goth)의 분위기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는 ‘Color of Blood’를 감상하게 되면, 이 음반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더미로 쌓일 법한 ‘저 싱어송라이터라 불리는 사람들의 집합’ 가운데서도, 꽤 유니크한, 꽤 도발적인 ‘존재증명’이 아닌가.

재미있다. 완전한 헤비메탈 음반도, 완벽한 일렉트로니카 앨범도 아닌 이 작품은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고, 난도질하고, 가끔은 도륙하며 어떤 ‘혼종’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처럼 들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이런 ‘잡탕’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부족을 ‘다양성’이라는 장벽으로 가리려는 허튼 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그런 편견을 ‘편견’이었다고 알려주는 괴팍한 음반들이 있다. [Abyss]는 틀림없이 그런 음반이다.

3.5 Stars (3.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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