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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rium: Zzooouhh

지금은 잊혀진 네덜란드의 Celtic Frost의 후예


얼마 전에 쓴 글이지만, Sempiternal Deathreign이 [The Spooky Gloom]을 발표한 것이 1989년이었으니 그 시절, 잘 알려진 밴드들 말고도 이미 완성된 둠 메탈을 연주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했었다. Delirium(동명의 밴드가 하도 많으니 주의할 것)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앞서간 네덜란드 둠 메탈 밴드라고 할 수 있다. 1988년에 데뷔한 이 밴드도 정규작으로는 이 앨범 [Zzooouhh]만을 발표하고 활동을 멈췄으니, 정규 앨범을 1년 늦게 발매했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Sempiternal Deathreign과 비슷한 구석들이 눈에 띈다. 어쩌면 두 밴드가 당시 서로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묵직한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고, 앨범을 내기는 했는데 그 만큼 잘 안 팔리던 밴드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Sempiternal Deathreign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Sempiternal Deathreign이 스래쉬메탈의 면모를 짙게 보이던 시절의 데스메탈이 Black Sabbath의 영향 하에 둠 메탈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을 했다면, Delirium의 음악은 Celtic Frost의 스타일이 둠 메탈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려주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럴한 면모는 없으니 [Into the Pandemonium]보다는 [To Mega Therion] 생각이 더 많이 나는 편인데, 특히나 ‘Bitch’나 ‘Amputation’ 같은 곡에서의 리프나 보컬은 Celtic Frost의 오마주에 가까울 정도이다. 말하자면 이들이 둠 메탈을 연주하는 방식은, Celtic Frost를 좀 더 데스메탈적으로 만든 스타일의 리프(데스메탈 밴드와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Asphyx가 적절할 것이다. 특히 [The Rack]에서의)를 미드템포로 연주하면서 앨범 전체적으로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앨범이 단조로와서는 곤란하다. 물론 밴드도 이 점을 알고 있는지라, 나름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사실, Mark Hanout의 보컬은 ‘Bitch’나 ‘Amputation’ 같은 곡을 제외한다면 Tom G. Warrior보다는 Martin van Drunen(이름만 봐도 티가 나듯이, 이 양반도 네덜란드 출신이다. 그러고 보니 Asphyx에도 있었구나)에 더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앨범의 다른 어느 곡보다도 빠른 템포의 리프를 들려주는 ‘Menace Unseen’의 경우에는 Pestillence의 스트레이트한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미드템포의 연주를 들려주는 앨범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미드템포로 일관하는 곡도 하나도 없다. 이펙터도 거의 쓰지 않으면서 거의 템포 조절만으로 곡의 굴곡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가는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주 단단한 연주를 들려주는 베이스와 드럼이 기여하는 바 크다. 사실 이 앨범의 지나치게 작고 얇게 녹음된 기타 파트는(이 시절의 많은 데스메탈/둠 메탈 앨범들이 그렇다. 아마 고질인 듯하다) 앨범의 묵직한 분위기를 갉아먹는 면이 있는데, 결국은 그걸 극복하는 것도 밴드의 연주와 송라이팅인 셈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 앨범이 Prophecy Prod.의 첫 번째 발매작이다. 멜로디 좋은 둠-데스나 네오포크 등이 많이 나오고 있는 레이블의 현재를 생각하면 조금은 의외일지도 모른다. 이후의 소위 ‘고딕 메탈’ 등의 사운드와는 시기를 생각하더라도 확실히 거리가 있는 앨범이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저 눈썰미 좋은 레이블 주인장도 이들을 발견했고, 이 정도면 기대에 부응하기는 충분한 음악이건만 이 정도로 묻혀버린 건 무엇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하긴 아무리 마이너한 스타일이더라도 시장에 나오는 순간 음악은 음악이면서 동시에 상품이 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읽는 동안 한 번이라도 이들의 음악이 궁금해졌다면, 아마 만족할 것이다.

덧붙임:
이 앨범은 2011년에 Memento Mori에서 한정판 CD로 재발매되었다. 나온 지 좀 됐다고 해서 안 보이는 물건은 아니다.

4 Stars (4 / 5)
 

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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