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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ens: The Anecdote

준비된 MC(시인)의 본능적 사유

이 글은 본작 발매 이후, 바로 작성하여 필자의 블로그 등에 기재한 바 있는 리뷰이다. 29일 열렸던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힙합 음반과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The Anecdote]이기에, 이렇게 다시 이 지면에 올려보고자 한다.

 

혹자가 (한국)힙합의 활발한 창작기라는 근거로 (한국)힙합의 르네상스를 운운하던 2008년 ‘최고의 팀’의 일원이자 어떠한 언어로도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던 22살의 MC 이 센스(E Sens)는 한 커뮤니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본능적으로 랩을 하는 MC가 정말 멋있는 MC라고 생각한다.’ 한참 동안 이 주관적 견해를 두고 깊게 상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필자는 비로소 현재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이 센스라는 MC를 두고 스스로 성립(?)시킨 하나의 예견적 진리치라는 당연한 결론을 음미할 수 있었다. 본능적인 읊조림이야 중언부언으로 가치판단할 수 없는, 랩퍼이기 이전에 MC의 실행 방식일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식의 형언을 첨부하건 간에 중요한 사실은 랩을 할 수 없는 MC는 랩을 하지 않는 MC라는 것. 더불어 물론 흔히 MC의 전언에 뒤따르는 판단의 일부분만이 MC의 의식을 해석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이를테면 MC의 앨범에서 종종 거론되곤 하는 ‘자기 서사에 충실한 음감의 뒷받침’, ‘기술적(랩 톤, 스타일 등을 위시한) 진보의 이룩으로 충분히 평가받지 못 하는 MC의 진실성’과 같은 다각적 입장에서 지적하는 부분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 이 모든 사고의 맥락과 판단을 터무니없이 뭉개는 하나의 고백록이..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출간되었다. 결국 위와 같이 발본적으로 느껴지는 MC의 실천적 토대에 대한 오해의 풀이도.. 역설적으로는 이렇게 밀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고유한 이야기 전달에 몰입하는 MC의 서사적 운용에.. 부질없게 뒤집힐 수밖에 없는 하나의 부끄러운 관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성공의 기준치(라고 불리는 요소들) 그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지향하는 모든 과업(야망)들을 적재적소의 비속어로써 암암리에 조소함은 물론이요, 현실적인 기억으로 자리한 가족의 흔적들, 특히 유소년 시절의 아버지의 육성과 그로 인해 비춰지는 당신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감각들을 묵묵히 묻는 등.. 오래된 서사를 여과 없이 용해시킨 듯한 시구가 왕왕 머무르는 이 센스의 문제적 처녀작 [The Anecdote]는 앞에서 언급한 그대로의 작품이다. 본작에 대해 전해지던 모든 수많은 깊은 기대들과 본작의 출반 이후의 그 모든 상찬의 목소리들, 피드백들, 공감의 울림들을 모조리 거론하며 본작에 대한 숭고한 감정들을 총체적으로 다듬고 싶지만, 그 모든 흔적들을 함께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머금고, 본작의 수필적, 음악적 면모에 필자는 더 가까이 다가서기로 하였다.

시험지들은 나를 겁주지 못해. 재미도 없네.
나의 적성 검사 결과는.
다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면 대체 왜 해
왜 해, 괴롭다가 시간 다 가겠네.
‘주사위’ 중에서

희미한 멜로디 라인을 느슨하게 흘리면서도, 시종일관 트랙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지배하는 신스 루프의 단선율 위로 무드의 특질상 툭툭 던져지는 ‘주사위’같은 질감을 형성하는 둔덕진 드럼이 탁한 감성을 자극하는 ‘주사위’에서부터 그는 기억이 부르는 유년기서부터 시작되어 청춘 이전까지 지속된 인간적 진로에 대한 사유 덩어리들을 순행적으로 풀어 진술한다. 세대론이 점지할 수 없는 인간적 영역에서, 감정에 섬세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건네볼 수 있는 의구심들(‘무엇이 나의 인생을 만드는가’에 관한 제일 보편적인 부분에서부터 이미 의구심으로 인한 열병은 시작될 것이다.)에 자신의 생각에 대한 기억들을 중첩시키며 인생을 위아래를 넘나드는 주사위 게임에 빗대는 그의 가사적 면모는 뭇 생활-철학적인 전선을 마련하기도 한다.(덧붙이자면, 이런 주사위 게임은 인간의 손에 의해 위아래의 공간적 지점에 낙하되겠지만, 인생은 얼마든지 인간의 손에 기인하지 않더라도 공간적 지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훅(Hook)에 드러나는 구절들과 매 벌스(Verse, 절)에 깃든 생각들이 이질적인 역학 관계를 띠고 있는 것도 주사위에 빗대어진 인생이란 관념의 반증이라 할 만하다.) 그가 아홉수를 넘기기 이전에 이 곡에 담긴 그의 서사적 사유의 구절들이 현실적인 풍경들에 대한 가장 담백한 진술로 전해졌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괴롭다가 가는 시간을 곧이곧대로 수긍하는 장님과 벙어리들이 넘치는 대세의 현장(?)에서 이 곡은 계속해서 돈 많으면 장땡이라고 충분히 고개를 끄덕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존중을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친구 몇 안 둬. 필요 없기도 하고.
붙다 말았다 할 꺼 뭐 하러 굳이 또 찾어.
뒷통수 치는 애 아님 이 시스템의 펫.
Real recognize real 그거 징그러운 멘트.
내게 달린 꼬리표는 부적응.
‘A.G.E’ 중에서

‘주사위’와는 다른 질감의 청량한 스네어(Snare)가 그 자체의 붐뱁 톤으로서 멜로디의 기승전결을 장악하는 ‘A.G.E’에서 이 센스는 훨씬 작두같은 일갈을 날리기를 서슴치 않는다. 미니멀한 차임벨(Chime Bell)의 부수적 청각 효과는 곡의 무드를 더 무미건조하게 다듬으며 이 센스의 언어들이 사실 그대로 전해질 수 있게끔 돕는 조력음의 역할을 한다. ‘주사위’에서의 사적 진술이 ‘A.G.E’에 이르러서는 인생, 그리고 문화 전반의 뒤안에 숨은 모든 질 나쁜 미치광이들에 대한 분노를 늘어놓는 과감한 공적 비판으로 천착한다. 시구는 현실적인 감각들의 왜곡된 질을 외면하기보다는 더 고통스러울 수 있도록 다가서며, 기성의 진부한 대화들에 끊임없이 시비를 건다. 그리고 이 시구들은 절대 지워질 수 없는 이 센스의 여과없는 단상에 기인한다.

뭐라도 해볼라고 꺼낸 펜으론
줄만 수십개 그었네 계속.

쓸데없는 고집에 꼬맹이같이 떼쓰는 게 내 모습이래네
근데 난 요즘 한국 래퍼듣고 좋은 적이 없네 그냥 내가 해야지
– ‘Writer’s Block’ 중에서

간단하게 슬럼프로 풀이되곤 하는 ‘작가의 장벽’에 대한 많은 생각과 글들 역시 온전히 그의 일화들을 수놓는 무수한 언어 조각들에서 비롯된다. 작가정신은 소재(또는 근원적 생각)를 끊임없이 갱신하기를 지향하는 장래의 가능성을 묵시적으로 품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의 침묵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는 애석한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 애석한 책임(침묵)이 바로 이 ‘작가의 장벽’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무래도 이 센스는 이러한 관념에 거진 남아있는 목표와 진실을 파악한 뒤에 따르는 씁쓸한 회의를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하다. 끊임없이 일터를 넘나들며 정수로의 회귀를(Back To Basic) 말하면서 생활 속에서 느끼는 공허한 느낌들을 더듬고, 또 MC로서의 삶에 애증을 표하기도 하는 그의 복잡하고, 모순된 표정들이 떠오르는 듯하다.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비트만큼이나 계속해서 울리는 ‘Writer’s Block’의 의도치 않은 획득의 목소리에 심히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세련된 라인으로 얹어진 신스 사운드는 누군가가 말하듯, ‘향수’를 불특정하게 뿌려놓은 듯 꽤 달큼한 멜로디를 생성한다. 그러나 나른한 작가 정신의 일시적 오류(Writer’s Block 그 자체)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은 두통과 쌉쌀한 내면의식을 유발한다. 이 센스가 일상에서 포착한 슬럼프의 본질이란 되려 그런 무료한 고통들을 다스릴 수 있는 근면한 동기들을 상실했다는 것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다.

똥쫀심에 현실은 개털인 내 음악
영등포 옥탑에 래퍼 넷 같이 사네
닭한마리 시키면서 뿜빠이 처량해
‘Next Level’ 중에서

익살스러운 보컬 샘플이 전개되고, 담담하게 음악적 동기가 피어난 데 대한 흔적들을 차례차례 읊조리는 ‘Next Level’에서 단연 돋보이는 소재는 이 센스의 인간적/음악적 뿌리가 된 ‘대구’라는 지명일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확장된 그의 존재에 대한 커리어들은 그가 직접 서술하는 의식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 트랙은 의식의 흐름 그대로 따라가는 데 듣는 지점이 있는 셈이다. 점진적인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곡의 흐름 내내 운운하는 그의 구절들은 당연스럽게도 결과론적 성취에 대한 증명과는 거리가 멀다. 뿌리로부터 연유한 정체성의 모티프, 그리고 모티프로부터 피어난 여러 성과들이 현실적 보상에 비례하지 않는 지독히 ‘현실적인’ 일상의 흔적들에 대한 담백한 고백은 MC로서 그의 다음 단계란 어쩌면 끝나지 않은 것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물론 곡의 말미에 이르는 벌스(Verse)에서 그런 일상들은 기어이 타파되고 만다.) 이 곡은 본작에서 가장 그의 ‘MC’로서의 자전적 트랙에 가깝다. 윙윙거리는 관악 루프와 강인한 드럼의 무게감 앞에서도 그의 진술들은 유독 그보다 더 크게 들린다.

예술은 개뿔
차비도 없으면 뭔 의미냐
의미가 있다면
그게 대체 뭔데 의미가
소름돋게 헛물켜는 말만 하는 놈들
– ‘삐끗’ 중에서

이번에는 현악기(하프) 리프가 큰 틀의 멜로디를 구현한다. 도입부의 목소리는 돈, 명예, 유흥의 수단으로서의 계집을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에 이 센스는 발화를 시작한다. 성공의 시기적 압축으로 인한 타자에 대한 피해의식, 보상심리 그리고 세월 앞에 시기상조 격의 성공을 불러제끼며 예술의 가난한 성질을 줏대 없이 운운하는 모든 비린내 나는 위선들을 말 그대로 ‘삐끗’,‘삐걱’대는 결함들로 비판하는 그의 톤에는 조곤스럽지만 뼈가 있는 시선이 서려 있다. 명예로 점철되는 성공의 역설들은 참으로 많은 소모적인 인식의 낭비를 불러일으킬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임을 애써 외면하려드는 태도 역시도 다 삐끗거리는 암묵적 통증인 것이다. 좀 더 깊숙이 얘기하자면, 그런 통증이 차라리 견딜만 하면 반이라도 가겠지만, 그걸 견디지도 못 하면서 안 아픈 척하는 그 부질없는 고집 때문에 현실적인 대화들 역시도 ‘삐끗’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곡의 막이 내리고 들리는 이 센스의 통쾌한(냉소에 가까운) 웃음이야말로 세속적 위선(에 대한 변명)에 대한 칼부림이라고 느껴진다.

실실 웃으면서 지내지 않으면 손해
그러면서 속으론 경쟁

같잖은 평가질의 정면에 우뚝섰네

개털일땐 다 까더니
생기니 변하는구나
‘10.18.14’ 중에서

1분 30초도 안되는 러닝타임의 곡이지만, 적잖은 (미시적인) 의혹들이 꼬리치는 이 곡을 그대로 듣는다면 내용은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올드 스쿨 풍의 베이스와 퉁퉁 튕기는 드럼 박자가 곡의 기조이자 중심을 이루는 이 ‘짧지만 굵은’ 곡에서 그는 역시 모든 뻔뻔하기 그지없고, 또 용감하지도 못한 기준들에 그의 또렷한 목소리로 칼을 들이댄다. 정면에 위치한 그의 굵직한 전언은 재치 있게 이 모든 전이된(혹은 왜곡된) 현실들을 놀려댄다.

난 아들. 아빠의 아들.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 삶은
지금하고 달랐을까.
성격도 지금 나 같을까.

난 최고였던 아빠의 모습만 알고 있어
소원이 있다면 아빠와 술 한잔 하고 싶어.
‘The Anecdote’ 중에서

요란하게 다 말해서는 안 될, 조심스러운 곡이다. 사운드의 여백을 반쯤 메우는 무거운 신스 멜로디가 곡의 문을 열고, 풀어헤친 듯한 선율이 곡의 메말라 있는 감성을 부각하는 듯 깊게 침윤된 사운드를 담고 있는 ‘The Anecdote’는 모두가 느낄 수 있다시피, 이 곡의 가장 뿌리깊은 표상이자, 본작의 전부라고 해야할 것이다. 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가족에 의한 흔적과 상실, 사건들로 이루어진 서사를 앞에 두고 이 센스는 진지하지만, 슬픔을 배제한 담담한 억양으로 서사의 낭독에 임한다. 아버지의 작고를 이른 나이에 겪은 그의 의식은 오로지 이 센스 그 자신이 기댈 수 있었고, 또 의도치않게 내쳐져야 했던 그의 회고를 마주하는데 주력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기억(의 서사)에서 비춰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영원히 소중해야할 소원을 말하기도 한다. 이 곡에서 슬픔은 멜로디로 인하여 크게 고조되고 있으며, 청자는 이 곡의 서사가 갖는 현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면 외려 더 큰 부분을 보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곡의 현장성은 물론 생생히 그의 흔적을 떠올릴 수 있게끔 하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무거운 서사를 어떠한 감정의 요동 없이 덤덤하게 들려주고 있는 이 센스의 이야기가 지닌 직접성에 더 깊은 울림을 두어야할 것이다. 끝으로 이 조그마한 지면을 빌어, 그의 부친의 불편 없는 영면을 기도한다.

난 화가난 채로 채근하듯이 꿈을 쫓았지
그 느낌 어떤건지 알자마자 관두고 닥치고 음악
나보고 니는 싹수가 별로라던 니 말 씹으며 난 앞만 봐
‘Back In Time’ 중에서

선공개된 바 있는 곡이기에, 과거 이 곡이 공개되던 시점에서 생각해본다면, 분명 이 곡은 본작의 윤곽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곡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의 제목 역시도 그런 부분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약간 어긋난 듯한 박자로 곡의 굴레를 돌리며, 보컬 샘플의 에코를 곡의 내부에 전반적으로 조율하여 일관되게 전개함으로써 활기를 부여하고 있는 부분이 안정된 감각을 유도한다. 이러한, 곡의 멜로디 역시 이 센스의 시적임과 동시에 수필적 진술로써 매우 넓은 동력을 얻는다. 특히나 ‘채근하듯 꿈을 쫓았다’는 그의 시구가 담백한 향을 품고 있는 건 이 곡이 띠는 ‘(감성팔이로서의 화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회상’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킨다. 결론적으로 그는 그의 과거를 진술하는데 있어 정직한 태도를 견지하기에 ‘The Anecdote’가 타이틀로서, 또 서사적 완결체로서의 성질이 다분하다면, ‘Back In Time’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부담 없는 두드림에 가깝다.

뇌속에 이끼같이 껴있는
허영심 전부 갈아치워

내 태도가 철없어
그 말도 상관 없고
관심 꺼 그냥 넌 그렇게 살어
– ‘Tick Tock(ft. Kim Ximya)’ 중에서

내 걷는 속도론 닿지 못할 곳에 놓여진게
내가 찾는 보물일까. 보물이란건 있나?

내 기분하곤 반대로
내가 서는 무대는 화려하네
-‘Unknown Verses’ 중에서

여전히 잠겨 있는 멜로디 속에서 일관된 붐뱁의 뼛속 깊은 둔탁함으로 곡이 탄력을 얻는 와중에 흐르는 ‘Tick Tock’은 유일한 피쳐링 게스트 김심야(Kim Ximya)와 이 센스의 타협 없는 직설적 지적들이 돋보이는 곡이다. 사실 전반적인 무드를 따질 때 이 곡이 이탈하는 분분위기는 아니나, 다른 곡들과는 달리 유달리 튀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상 그 차이도 별 것은 아닐 것이다. 비판을 적시한 앞선 여타의 곡들이 냉소에 그치고 말았다면, 이 곡은 김심야의 특이한 랩 톤과의 협음(콜라보)으로 인해 훨씬 냉혈한 태도를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른 이 차가운 감정선을 찾아내어 이 곡이 주로 언급하는 테마인 인간이 가진 애처로운 악의를 음미해보는 것도 이 곡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주된 가치라고 하고 싶다.

곡의 종결을 불명한 상태로 전환시키는 듯한 제목을 가진 ‘Unknown Verses’는 사실 그의 믹스테잎에 수록되어 있는 곡의 동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곡은 그 곡에 비해 더 장중하다고 파악된다. 투명한 울림만이 사운드의 언저리를 맴돌고, 역시 투명한 비트가 메아리처럼 퍼지기만 하는 이 여백의 소리 안에서 이 센스는 자칫 사변적으로 전해질 수 있는 본인의 성찰들을 차분하게 다듬고 정리하며 이 미확인 구절들을 마무리한다.(여담이지만 기분과는 반대로 서는 무대는 정작 화려하다는 마지막 구절은 흡사 버벌진트(Verbal Jint)의 3집 [The Good Die Young]에 수록된 ’길‘을 의미하는 마지막 트랙 ’La Strada’의 전반적 무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예술과 감정은 때로는 교차하지 않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수취인은 분명하나, 어딘가 영원한 지점에 닿을 것만 같이 미지한 그의 발화들이 끝난 뒤에 근근이 울려 퍼지는 그의 파편화된 목소리들은 다시금 본작을 숙고할 수 있는 중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의 서사는 불명확한 자취를 남겼다.

본작은 서사의 흐름을 연속적으로 되짚을 수 있는 상당히 진실된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서사적 거리를 유지한 채 청자들의 뇌리에 각자의 방식으로 표류하고 있을 작품이다. 이것은 이 센스라는 시인의 범주에서 이뤄낸 있는 그대로의 정체의 발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수필의 감각을 이렇게 MC로서 체현하였기 때문이다. 이 센스의 본능적 랩어(시어,언어)들은 그가 견지하고 느끼는 시선이 그 뿌리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요, 그 모든 요소들은 그의 날 것 그대로의 서사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언제든 그의 감각을 조우할 수 있는 풀리지 않을 바람을 안고 있다. 그 바람의 일환으로서 본작을 일찍이 마주하게 된건 (집착에 가까운) 갈증을 매우 크게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목소리에 이렇게 응하고 있자니.. 어쩐지 그의 모습도 그리워진다.

4.5 Stars (4.5 / 5)

 

 

About 허희필 (6 Articles)
이명의 풋내기 필자 허희필(본명 : 허승엽)이라고 합니다. 거르지 않는 문장을 고수하는 편이나, 실은 가장 따뜻한 문장이야말로 좀 더 비판적으로 시선을 둘 수 있는 글쓰기의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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