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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igma: MCMXC a.D.

Enigma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에스닉 퓨전 장르다. 일찍이 Popol Vuh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Clannad와 Dead Can Dance가 팝 음악의 영역으로 정착시켰지만 대중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장르였다. 여기에 Enigma의 Michael Cretu가 신비의 묘약으로 첨가한 것이 바로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그리고 ‘Sadeness Part 1’은 방송 전파를 타자마자 기독교 단체의 집중포화를 받았는데, 이 해프닝이 단순하게 그레고리안 성가를 상업적으로 도용했다는 이유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다분히 의도적이었을 제목의 언어유희 때문이었는데, 그 단어가 슬픔을 의미하는 “Sadness”가 아닌 악명 높은 사드 후작의 사상을 고유명사화한 “Sadeness”였던 것이다.

애초부터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의 화살은 Enigma의 음악을 보다 많은 청자들에게 전파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Sadeness Part 1’이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했던,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명곡이었다는 사실이다. 앨범에는 그 외에도 진지하게 음미할만한 곡들이 촘촘하게 자리한다. 전설의 소프라노 Maria Callas에게 헌정된 ‘Callas Went Away’, 에스닉 퓨전 팝의 용도를 댄스 플로어로까지 확장시킨 ‘Mea Culpa’와 ‘Knocking On Forbidden Doors’도 발군의 창작력을 과시하는 주목할만한 곡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Enigma 이후 그레고리안 성가의 상업적인 특수를 누리게 된 인물들이 바로 저명한 기독교 수도승들과 합창단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Benedictine Monks of Santo Domingo de Silos의 [Chant]는 1994년에 가장 많이 팔린 팝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나아가 런던 소년 합창단인 Libera의 천상의 하모니도 비로소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종교 음악이 팝 음악 시장의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흐름이 Enigma의 음악과 그 성공으로부터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 팝 음악사를 대표할만한 아이러니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MCMXC a.D.]는 Mike Oldfield의 [Tubular Bells]와 Jean-Michel Jarre의 [Oxygen], Vangelis의 [Chariots of Fire]의 명맥을 잇는, 훌륭한 전자 음악 인스트루멘틀 앨범의 표본을 제시했다. 그 음악의 표현 방식에서 비롯된 소모적인 논쟁으로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 종교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콘셉트 앨범으로서의 가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또한, Enigma가 확립한 신성한 분위기를 가미한 전자 음악의 방법론은 이후 Delerium과 Conjure One 등의 후발 주자들에게 성공적으로 계승되면서 팝 음악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게 된다.

4 Stars (4 / 5)

About 이태훈 (4 Articles)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락매거진 파라노이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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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on Enigma: MCMXC a.D.

  1. 중학교 때 return to innocence가 히트해서 알게 된 이후로 정규 앨범들은 아직도 잘 듣고 있는 나름 팬인데요 ^^ 마리아 칼라스 얘기는 지금 알았네요~ 깜짝 놀라 들어보니 정말 칼라스 목소리까지 담겨 있네요 ㅋㅋ 숨은 목소리 찾기 처럼ㅋ 재밌어요! 신보랑 함께 구보(?)도 새롭게 다루어주는 이런 기사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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