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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vy: Atheist’s Cornea

서정이 격랑을 침범하고, 격랑이 서정을 살해할 때

일본이 자랑하는 밴드이자, 이제는 단연코 월드와이드 레벨의 밴드인 Envy가 걸어온 여정은 미지의 대륙에 ‘Envy’라는 국가를 하나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통상적으로 이들은 포스트하드코어/스크리모/포스트락 계열의 밴드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같은 장르적 범주의 타 밴드와 비교해보면,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독보적인 것인지 가끔씩 흠칫할 때가 있다. 특히 서정과 격랑이 서로를 품고 때로는 밀어내다가 예고 없이 터지는 휴화산처럼 분출하며 서로를 살해하는 대목은 본인들만의 브랜드라 할 수 있는 게 되었다. 침묵과도 같이 쌓아올리는 음들-어느새 지어진 멋진 건물-그러나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건물 전체를 붕괴시켜 버림-파국-고요.

그 ‘파국’과 ‘고요’의 음반을 목빠지게 고대해왔다. 이번엔 유독 인터벌이 길었다. 5집 [Recitation]이 공개된 해가 2010년이니, 꼬박 5년이 걸린 셈이다. 사람들은 흔히 3집부터 Envy의 스타일을 ‘emotional’해졌다고 규정하는데, ‘하드코어’한 느낌이 약해졌다기보다는 앞서 말한 도식을 적극 활용했다고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이번 음반은 더욱 몰입될 만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중 중반부에 매설해 놓은 하이라이트 3연타, ‘Shining Finger’-‘Ticking Time and String’-‘Footstep in the Distance’는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를 다 뒤져도 그다지 많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역대급 구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 예상 가능하지만 그 가능성을 넓히는 가운데 치명적인 반전을 숨긴 ‘Shining Finger’/최면적인 기타 루프 위에 ‘인류 최후의 날’을 목도한 보컬을 얹은 듯한 ‘Ticking Time and String’/이모코어와 포스트락의 오묘한 교집합을 모색하는 ‘Footstep in the Distance’. 아, 이건 ‘시간교란장치’다. 곡의 끝-결국 음반의 끝까지 리스너를 붙잡아 두는 저 저력. 이제는 다소 뻔해진 컨벤션을 가지고도 청자를 들었다가 놓을 수 있는 저 마력. 우리는 그런 음악을 하는 밴드를 1류 밴드라고 칭한다.

첫 곡 ‘Blue Moonlight’의 격렬한 변주는 간과해도 될 것인가? 어느 때보다 스트레이트한 이 곡은 포스트락의 작법에 길들여졌던 사람들에겐 ‘놀라운 도발’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5년을 기다리게 한 음반의 오프닝으로 아주 적격이다. 그와 부드럽게 접합되는 ‘Ignorant Rain and the End of the World’도 마찬가지로 커브를 그리지 않는 직선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문제는 한 앨범 내에 거하는 이런 다양한 흐름이 ‘음반 전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1-2번으로 예열된 ‘Envy라는 이름의 무드’가 3-4-5번에서 정점을 찍고 비상했다가 6번 ‘An Insignificant Poem’을 기점으로 다시 원만한 하강 곡선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팬들을 어떤 문턱에서 집중시켜야 할지, 그리고 ‘코어 트랙’이 아닌 곡들이 얼마나 선방해야 하는지, 밴드는 제대로 알고 있다. 첫째는 곡이고, 둘째는 흐름이며, 셋째는 포인트다.

해외 웹진의 평가는 현재까지 정확히 반으로 갈리고 있다. 읽어보니 박한 점수를 준 웹진은 “이제는 이런 음악이 한계에 왔다. Envy가 무뎌졌다”라는 평을 내리고 있다. 리뷰란 태생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니 그 견해를 일면 존중한다. 하지만, “무뎌졌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저런 너울과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밴드에게 저 무슨 말인지. 위에 올려둔 영상만 잠시 체크해도 감이 오지 않을까? 인간에게 ‘음악을 통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Envy의 음악은 아직 충분히 유효하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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