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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nt Glass/Collapsar: The Servants of Wrath Pt. II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간접체험

Flint Glass는 통상 파리 출신의 다크-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라지만 사실 Gwenn Tremorin의 원맨 밴드) 정도로 알려져 있고, 아무래도 레이블이 Ant-Zen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렉트로니카의 전형에 가까운 사운드를 기대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Flint Glass는 항상 어느 정도는 리드미컬한 노이즈를 섞으면서 – 물론 이건 일렉트로니카와도 잘 어울리겠지만 – 좀 더 묵직한 분위기의 앰비언트를 함께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고 보니, 사실 Flint Glass의 음악은 위에 적어 둔 것보다도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이 나타나고 있었다. 밴드는 90년대부터 활동하면서 일렉트로니카와 앰비언트는 물론, IDM과 인더스트리얼, 노이즈까지도 손대고 있었다. 다양한 스타일에 손을 댄 탓인지, 많은 경우 무자비할 정도의 비트까지 등장시키면서 일반적인 ‘멜로딕한’ 작풍과는 거리가 먼 음악을 들려주던 Ant-Zen의 다른 많은 뮤지션들과는 달리 Flint Glass의 음악에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멜로디를 찾아볼 수 있는 편이었다.

Collapsar는 프랑스 출신의 다크 앰비언트 프로젝트이다. Flint Glass처럼 Thibaud Thaunay라는 양반의 원맨 밴드이다. 작품이라고는 2009년에 발표한 [Beyond the Event Horizon] 뿐이니, Flint Glass도 경력이 길지는 않지만 Flint Glass보다는 훨씬 보여준 게 없는 셈이다. 다만, 이 [Beyond the Event Horizon]만큼은 다크 앰비언트라는 장르의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는 훌륭한 앨범이었다. 앨범명이나 수록곡에서도 엿보이듯이 웜홀, 블랙홀, 이벤트 호라이즌 등을 소재로 한 앰비언트를 구사하고 있는데, 여타 앰비언트 밴드에 비하여는 좀 더 명확한 서사를 제시하는지라 – 혹자는 콘셉트 앨범이라 평가할 정도 – 보통 생각하는 ‘감상용’ 앰비언트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스타일이다. 부적절한 면도 있겠지만, 영화 [인터스텔라]의 OST가 웜홀, 블랙홀 등의 체험을 최대한 낭만화한 음악이었다면, 그런 체험을 좀 더 냉정하게 상상하여 재현한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nt-Zen에서 6월 19일 발매 예정인 앨범 [Deus Irae]는 Phillip K. Dick과 Roger Zelazny가 함께 쓴 [Deus Irae]를 콘셉트로 하고 있고, 이는 위와 같은 점들을 감안하면 Flint Glass와 Collapsar의 공작으로 이용할 소재로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Flint Glass는 원래 Lovecraft의 작품 등을 앞서의 작풍으로 재현하던 프로젝트였고, Collapsar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건조하게 다룰 줄 아는 프로젝트였으니, 남은 이들이 과연 무엇이 일어났던 것인지 이해할 수도 없고, 인간성이 절멸의 끝자락에 다다른 포스트-아포칼립틱 SF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는 적임자인 셈이다. 덕분에 곡에서는 Lufteufel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의 황량하고 고독한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물론 Big C의 위험함도 동시에 다크 앰비언트 특유의 불길함을 빌려 재현된다. [Deus Irae]를 읽어 본 이들에게는 이 곡은 거의 영화 스코어에 비견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이 영화화된다면 말이다(내가 아는 한에서는 영화화된 적이 없다).

앨범이야 다른 수록곡들이 발표되어야 그 면면을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곡은 다크 앰비언트의 명곡으로 일청을 권해본다. 그리 섣부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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