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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 2015 후기

라인업이 중요한 게 아니더라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난생 처음 가봤다.

 

이 페스티벌의 역사가 어떻고 거기 상태가 저렇고… 따위의 글을 써봐야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장 주변에 서너 번 이상 가본 사람들이 즐비한데, 단 며칠 경험해본 페스티벌 감상문을 쓴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따라서, 실제 본 뮤지션의 라이브 중 인상에 남은 공연 감상기를 정리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이게 더 실용적이리라.

 

내가 글라스토에서 본 라이브는 다음과 같다. 여기엔 ‘집중해서’ 풀 라이브를 비롯해 3곡 이상 본 뮤지션을 포함했다. 한두 곡을 본 뮤지션은 제외했다. 멀찍이 앉아 밥 먹으면서 대강 들은 뮤지션도 제외했다. 글라스토를 경험한 이라면 알겠지만, 몇몇은 다 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는 법이고, 몇몇은 굳이 궁금하다면 밥 먹으면서 대강 듣게 된다.

 

The Charlatans UK, The Cambodian Space Project, 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 Alabama Shakes, Mary J. Blige, Run The Jewels, Caribou, Hot Chip, Courtney Barnett, Sleaford Mods, Years And Years, The Maccabees, Todd Terje & The Olsens, The Mothership Returns: George Clinton, Parliament, Funkadelic & The Family Stone, Ibibio Sound Machine, Hiatus Kaiyote, Future Islands, Belle & Sebastian, FKA Twigs, The Chemical Brothers, Grandmaster Flash.

 

응? The Who 어디 갔냐고? 화학형제 봤어. Kanye West? 화장실 가면서 2곡 좀 넘게 봤어. Father John Misty, Ryan Adams, Super Furry Animals, The Libertines, SBTRKT, Jamie XX는 어쨌냐고? 못 봤어. 그래서 욕 나왔어.

 

엄청나게 못 봤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스테이지가 너무 많고, 뮤지션들 시간이 너무 많이 겹치기 때문에 빨리 포기하는 게 정답이었다. 더구나, 쇼핑하고 쉴 시간도 필요했다. 공연을 보러온 게 아니라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것 아닌가?!(…)

 

당초 내가 원하는 공연 리스트에는 Park 스테이지(2008년에 생긴 스테이지) 쪽 뮤지션이 많았다. 그런데, 멀어도 너무 멀었다. 일행의 숙소는 John Peel 스테이지 근처였는데, 공연이 진행 중일 때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사람에 막히면 30분은 우습게 걸렸다. 한 마디로, 다른 공연 놓치고 힘들여 걸어가서 다시 돌아올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가장 편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 그러나, 대체로 본 라이브에 만족한다. 아쉬움은 없다.

 

금요일

 

우리 일행은 수요일 오전에 텐트를 쳤다. 이미 자리가 거의 없었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는 일행의 불평을 뒤로하고 목요일 오후부터 열리는 여러 뮤지션의 공연을 슬슬 감상했다. 최고은의 현지 라이브를 지켜봤고, 그 외 여러 나라에서 온 이름 없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William’s Green 스테이지에서는 라인업에 포함된 3팀 중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의 라이브가 진행됐는데 Wolf Alice, Drenge, 그리고 이름 모를 브라스 밴드의 신나는 공연이 이어졌다.

 

실질적인 시작은 역시 금요일부터. 이 간 큰 페스티벌은 이름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는 밴드 한 팀을 공연 당일에 알린다(올해는 Foo Fighters의 부상으로 인해 한 팀이 더 추가됐다. The Libertines였다.). 그 밴드는 Other 스테이지에 섰는데, The Charlatans UK였다. 이미 20년 전의 영광들이어서 그럴까. 주변 영국의 젊은 팬들도 이들을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한 마디로, 감흥도 없었고 공연도 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옮겼다.

 

당초 곡을 들어보고 궁금했던 The Cambodian Space Project의 공연을 봤다(이때는 내가 West Holts에서 계속 머무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의 신나는 라이브를 즐겼는데, ‘산울림 느낌이 난다’던 생각과 달리 보다 역동적이고 펑키(punky)했다.

 

그리고, Park 스테이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다. 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라이브는 정말 끝내줬다. 리버브가 강한 곡들을 여러 대의 기타로 연주한데다, 관객석 곳곳에서 마리화나 향기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하니 사이키델릭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두 대의 드럼이 내뿜는 단단한 타격감이 좋았고, 프론트맨의 나사가 반쯤 풀린 듯한 액션도 좋았다. 이 정도 퍼포먼스의 밴드라면, 비록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페스티벌에서 과감히 세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labama Shakes의 라이브는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Brittany Howard의 보컬을 두고 누군가는 Janis Joplin과 비교할 듯하지만, 라이브에서의 느낌은 그 이전 소울 시대 흑인 여성 보컬에 더 닿아 있었다. 생각만큼 파워풀했으나, 기대보다 더 정돈되어 있었다. Run The Jewels의 라이브는 기대에 못 미쳤다. El-P는 이날 Killer Mike와 함께 랩에 집중했고, 크루 DJ가 디제잉에 집중했는데, El-P의 랩 퍼포먼스가 Killer Mike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본인이 너무 흥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Caribou의 라이브는 역시 큰 무대에서도 좋았다. ‘Can’t Do Without You’를 연주할 때는 관객 전체가 홀린 듯한 분위기가 몸에 전해졌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2대가 함께 Caribou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감상하는 장면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어른이 아들과 함께 최신 트렌드의 음악에 몸을 맡긴 장면을 보며 ‘이들은 자기가 좋은 뮤지션이라면 누구든 공연을 봐 주며 키운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West Holts에서 바로 이어진 Hot Chip의 무대는 거대한 춤판이었다. 영국에서 이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당연히 사운드는 앨범보다 더 탄력 있었다. ‘Over and Over’와 같은 히트곡을 연주할 땐 이날 내가 본 공연 중 가장 큰 싱얼롱이 관객석에서 나왔다. 내 앞에선 이들의 광팬임을 자처한 남자가 미친 듯 춤을 춰댔는데, 왠지 ‘허당’ 느낌이 나 밴드의 사운드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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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날의 핵심은 첫 공연, 바로 Courtney Barnett이었다. 글래스톤베리의 메인 스테이지인 Pyramid에서 열리는 공연을 처음 본 순간이다.

 

앨범보다 Nirvana의 영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화장기 없는 젊은 여자 아이는 헝클어진 머리와 누더기같은 웃옷을 입고 등장했고, 왼손잡이용 기타로 사운드를 주도했다. 무대 액션은 Kurt Cobain을 여러 번 떠올리게 했다. 여기에 시니컬한 가사와 베이시스트의 적절한 뒷받침까지, 기대를 한참 웃도는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가장 좋게 들은 앨범 중 하나인 [Divide And Exit]의 영향으로, ‘이번이 아니면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Giant Sand를 포기하고 Sleaford Mods의 공연을 보러 John Peel로 향했다. Jason Williamson이 침을 거칠게 튀겨가며 영국의 액센트로 ‘fxxking’을 연발하며 내뱉는 ‘랩’은 듀오가 지향하는 계급성을 여과 없이 입증했다. 아무런 무대 효과도 없이, 마치 만담을 보듯 감상한 이들의 영국식 ‘펑크 랩’ 무대는, 글래스톤베리가 아니었다면 결코 보기 힘들었을 명장면이었다.

 

영국에 온 이상 영국식 기타 록 공연을 하나쯤은 보고 싶었다. 이미 Super Furry Animals를 포기한데다, George Clinton이 등장해버리니 Spiritualized도 포기함은 당연한 일. The Maccabees의 라이브를 꼭 챙겨봐야만 했다.

 

공연 도중 현지에서 큰 인기 몰이 중인 Jamie T도 합세해 올해 발매 예정인 신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현지 남자 팬들이 관객의 상당수를 차지함을 확인 가능했다. 듣고 싶은 곡을 어느 정도 들은 후, 시간에 맞춰 Todd Terje & The Olsens의 곡을 춤추며 듣기 위해 West Holts로 발걸음을 옮겼다. 곡에 맞는 영상을 틀며 점점 곡의 피치를 올리는 노련한 라이브 세트리스트를 구성했는데, 라이브 세트의 덕분에 박진감이 더욱 배가되었다. Hot Chip의 공연을 느긋이 즐기면서 봤다면, 이들의 공연은 정말 제대로 춤에 빠져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도 역시 West Holts. 펑크(funk)의 전설이 온 이상, Kanye West는 포기해야 했다.

 

The Mothership Returns의 라이브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었다. George Clinton은 Sly Stone Family 멤버들을 대동하고 Sly and the Family Stone의 ‘Dance to the Music’, ‘Stand!’, ‘Family Affair’ 등 전설적인 히트곡 퍼레이드를 열었다. 2부는 본격적인 펑크의 무대였다. Parliament의 히트곡을 포함해 Funkadelic의 최신곡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비대해져 날렵하게 움직이진 못하지만, 여전히 펑크의 대부가 선보이는 무대는 질척함과 끈끈함, 펑키함의 거대한 소용돌이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라이브에 비해 나이 든 팬들이 흥에 겨워 몸을 흔든 반면, 공연에 실망하고 뒤로 빠져나가는 젊은 팬도 많이 보였다.

 

일요일

 

이제 이 거대한 지역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싶으니 마지막 날이 되었다. 라인업에서 밴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후, 단 두 곡만 듣고 라이브 관람을 결심한 Ibibio Sound Machine의 무대를 찾아 다시 West Holts를 찾았다. 아프리칸 리듬이라기보단, 굳이 오리엔탈리즘적 입장을 갖고 얘기하라면 ‘태평양적 사운드’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라이브가 이어졌다. 기대만큼 곡의 감정이 깊게 출렁이진 않았지만, 관객을 흥에 겨워 어쩔 줄 모르게 유도하는 노련함이 돋보였다.

 

올해 나온 이들의 신보를 듣고 반드시 공연을 챙겨보리라 다짐한 Hiatus Kaiyote의 라이브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유일하게 펜스를 잡고 보았다. 라이브는 앨범보다 더 재지한 느낌이 강했는데, 멤버간의 결속이 매우 뛰어났다는 점이 단연 만족스러웠다. 프론트 우먼의 끼가 넘쳤으나, 소울풀한 곡을 연주하는 멤버들의 서포트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

 

고심 끝에 Alt-J, Steel Pulse, Perfume Genius를 포기하고 Future Islands를 선택했다. 가장 보고 싶었던 Perfume Genius를 보러 Park 스테이지까지 가기가 무엇보다 싫었고(이 때쯤엔 내 저질 체력이 완전 바닥나 있었다), 마지막 날인 만큼 Samuel T. Herring의 ‘호랑나비춤’을 보며 배를 잡고 웃으며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은 역시 기대를 충족시켰다. 영국팬들도 Samuel T. Herring의 유별나게 과한 ‘아저씨 무대 매너’를 즐기는 듯,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너무 진지했다) 심장을 고릴라처럼 두들기거나 게다리 춤을 출 때마다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필이면 첫 곡 연주 후 Herring이 뒷걸음을 치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아예 공연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유쾌하게 공연을 즐긴 후, Other 스테이지에서 연이어 Belle & Sebastian의 무대를 감상했다. 이미 한국에서 한 번 본 바 있지만, 마음 편하게 페스티벌의 여운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는데, Stuart Murdoch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즐기자고 말해 잉글랜드 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어쩐지 지켜보는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은 역시나 ‘The Boy with the Arab Strap’의 인트로와 함께 관객들을 무대 위로 올리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는데, 노인부터 5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까지 무대에 올랐다. 이상하게 이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박수를 치며 라이브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본 라이브였는데도, 귀국한 후 계속해서 머리에 떠오르는 건 바로 이 무대였다.

 

이 때는 흐릿한 날이 지속되다 해가 비치는 때였고,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밝았다. 사람들은 두껍게 껴입은 겉옷을 벗고 햇볕을 즐기며, 편안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행복함만이 가득했던, 페스티벌에서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를 모두와 함께 나눈 것 같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진동시켰으리라.

 

남은 두 라이브는 모두 조만간 한국에서도 볼 예정에 있던 쇼였다. FKA Twigs의 라이브를 선택했다. 기대보다 드러밍의 진동은 James Blake의 느낌이 더 강했고, 무대 퍼포먼스는 현대 예술을 보는 기분이었다. 곡은 좋고 느낌도 좋았으나, 그녀의 과도한 퍼포먼스는 이해하기 조금 난해했다. 실내 공연이 야외 공연보다 훨씬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Other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 The Chemical Brothers의 새로운 무대 세트를 확인했다. CJ E&M이 왜 물량과 규모를 강조하며 안산M밸리 록 페스티벌의 크기를 홍보한 지 알 수 있었다. 효과 영상은 예전 내한 때보다 실제 영상물 비중이 많아 더 다채로운 색감을 보였고, 레이저 쇼는 아련함을 부각시켰다. 공연 후반부에는 로봇 조형물이 내려와 모두를 놀래켰다. 관객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관객들은 혼이 나간 듯 변화하는 곡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며 미친 듯 춤을 춰댔다. 이제 페스티벌이 끝나간다는 생각이 이들을 더 불타게 만들었으리라. 곳곳에서 흥분한 관객이 홍염을 터뜨렸고, 불꽃을 쏘아올렸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보다 라인업이 더 좋은 페스티벌은 많다. 편의성이 더 좋거나, 가격이 더 저렴한 해외 페스티벌도 많다. 그러나 이곳을 비롯해 여러 페스티벌을 다녀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내게 말했다. “꼭 하나만 보러 외국에 나가야 한다면, 글래스톤베리밖에 없다”라고. 그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라인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텐트가 침수돼 기념품이 젖기도 하고, 기타 안 좋은 일을 겪기도 했으나 돌이켜보면 모두 웃음으로 기억할 만했다. 비록 글에서는 뮤지션 중심 이야기를 썼으나, 글래스톤베리는 기본적으로 페스티벌이었다. 음악 스타들의 라이브는 페스티벌을 빛내는 조연일 뿐, 관객이 진짜 주인공이었다. 잘 보고 돌아왔다.

About 이대희 (5 Articles)
프레시안에서 기자 일로 밥 벌어 먹는다. 내근 중일 때는 햄 주문 전화도 받아 봤다. 음악을 인연으로 이명 필자로 들어왔다. '왜 애인이 없느냐'는 질문에 '음악과 연애해서...'라고 말해보고 싶다. 전축 장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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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on 글래스톤베리 2015 후기

  1. 그저 부럽고 부럽고 부러운 저는… 읽고 또 읽고 한 번 더 읽어 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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