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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peed You! Black Emperor: Asunder, Sweet, and Other Stories

40분 23초라는 폐허

주지하다시피, Godspeed You! Black Emperor는 극도로 노출을 자제하고, 언론과의 만남을 기피하는 밴드로 인식되어 왔다. 뻔한 이야기지만, 대화나 소통이 꼭 ‘언어적’일 필요는 없다. 맞다. 작가는 작품을 던져놓는 것으로, 그에 대한 해석을 위임한다. 그로부터 더 다채로운 담화(혹은 불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이 포스트락/익스페리멘탈락 밴드(혹은 공동체)가 지금껏 밟아온 여정은 그에 정확히 부합한다. 시대의 타락을 연주했던 [F♯ A♯ ∞]로부터, 묵시록의 징후 앞에서 영원히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비극을 울리게 했던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으로부터 우리는 숱한 힌트와 의문을 얻었다. 물론 절망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Yanqui U.X.O.]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년이라는 휴지기가 있었다. 포스트락 씬이 붕괴되면서(밴드 자체가 일가를 이룬 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다), 밴드도 조금씩 잊히는 듯했고, 음악이야 여전히 출중했지만 정말 긴 휴식을 깨고 등장한 2012년의 [Allelujah! Don’t Bend! Ascend!]는 해외에서의 평가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물음표가 붙었던 작품이었다. 그건 대충 이런 것이었다. 밴드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한편으론 어떠한 ‘충격’을 장래의 리스너들에게 가할 수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마치 ‘꼬뮨’과 같은 이 ‘하드한 공동체’에서 배태된 산물이 만일 효용가치를 상실했다면, 어떤 방향으로 밴드의 목적지를 돌릴 것인가? ‘사운드의 관성화’라는 방해물은 어떻게 타고 넘어갈 것인가?

그리고 이 음반 [Asunder, Sweet, and Other Stories]와 마주했다. 역시 예상은 깨졌다. 이들이 꺼내든 승부수는 ‘정면돌파’ 혹은, ‘초기작들이 해냈던 암울함으로의 회귀’였다. 그대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기 담긴 곡들이 팬들에게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다. 2012년 ‘Behemoth’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라이브를 구획화해서 내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팬들의 기대치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참신한 연료가 고갈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패를 집어든 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의 여부를 이 시점에서 단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날마다 새 것을 개발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비롯된 ‘초라한 결과물’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간결하지만(40분 23초로 지금까지 발매했던 모든 음반보다 스케일이 작다), 담겨 있는 네 트랙은 현재 자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코어’만 집대성했다는 느낌을 준다.

오프닝을 장식하는 첫 곡, ‘Peasantry or ‘Light! Inside of Light!’야말로 그러하다. 차라리 [F♯ A♯ ∞]에 수록되었어도 절묘한 얽힘이라고 판단했을 만큼 비관적이고 다크한 향기가 청취의 공간을 한 아름 메운다. 묵직한 기타의 리프는 Pelican에서 영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그럴 리는 없다고 보지만) 헤비하게 짓누른다. 큰 반전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을 통해 어떤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틀림없이 초기작들이 제시했던 ‘폐허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펑’하고 터뜨리는 맛은 없지만, 오히려 잔상은 오래 유지된다.

Godspeed의 강성 팬이라면 이들에게 있어 ‘곡의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엄밀히 말하면 이 네 트랙은 ‘한 트랙’을 넷으로 쪼갠 것이다. 그래서 ‘Peasantry or ‘Light! Inside of Light!’의 기운을 드론 사운드로 몰아붙이는 ‘Lamb’s Breath’와 ‘Asunder Sweet’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전술했던 트랙이 상대적으로 동(動)적이라면, 이 두 트랙은 고요한 앰비언트 사운드로 일관하는데 이 ‘흐름’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트랙이자 앨범 최고의 모멘트인 ‘Piss Crowns Are Trembled’를 위해 준비된 구간이다. 오프닝 트랙을 뒤틀어 어긋난 수미상관의 효과를 노린 점도, 현악과 기타의 엇갈리는 매칭을 통해 만들어내는 기이한 시퀀스도, 모두 이 하이라이트에 집약되어 있다. 70분~80분의 대작이 아니더라도, 자유자재로 감상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건 밴드가 연식이 되었다는 징표다.

뭐, 이는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 이제 일정 수위의 퀄리티 있는 음반을 고대할 수 있다는 건 플러스, 뒷머리를 강타하는 실험작을 바라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마이너스. 하지만, 언제든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놓을 수 있는 밴드가 쉽게 폼이 하락할 것이라 확신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이 음반을 듣는 이 순간만큼은.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5 Comments on Godspeed You! Black Emperor: Asunder, Sweet, and Other Stories

  1. 얘넨 뭔데 이렇게 cd 값이 비싸? 라고 생각하며 안사다가 중고로 앨범 구입해서 음악 들어보곤 반해서 전작 구입했던 그룹입니다. 정말 오랜만의 신보라 더 반갑고 이런 그룹은 계속 활동해주는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2. 이번 음반도 좋더라고요 역시 클라스는 영원

  3. 재작년 도쿄라이브에서 연주했었음. 죽였음!

  4. 괴물 같은 밴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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