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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melot: Haven

유럽의 옷을 입은 미국 밴드가 고국을 잊지 않으면?

[Haven]은 심포닉/파워/멜로딕/프로그레시브메탈 밴드 Kamelot이 내놓는 통산 11번째 정규작이다. 밴드의 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듯, 전임 보컬리스트 Roy Khan(ex-Conception)이 9집 [Poetry for the Poisoned]를 끝으로 팀을 탈퇴해, 10집 [Silverthorn]부터 밴드의 마이크는 Tommy Karevik(ex-Seventh Wonder)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지난 몇 년 사이 밴드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많은 팬들을 거느렸던 Roy가 Kamelot의 핵심으로서 밴드와 함께 소위 ‘극적(theatrical) 헤비니스’의 한 지평을 열었다는 점을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들 이후 등장한 팀중엔 어쩔 수 없이 Kamelot이라는 거대한 강의 지류가 되어버린 불쌍한 팀들도 많다. 그만큼 Kamelot은 하나의 장르명을 뜻했고, 장르 내부에서도 전형 혹은 모범이었다. 특히 2001~2005년 사이에 공개된 [Karma], [Epica], [The Black Halo]는 누가 보더라도 밴드의 정점이었고, 이 계열 헤비니스 밴드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들을 마치 다 계산했다는 듯 영리하게 피해간 수작 퍼레이드였다. Roy Khan이 아닌 누군가로는 이 완성도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유니크한 음색을 가진 Roy가 팀을 나간 후, 새 보컬리스트가 극복해야 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버린 Roy를 극복하며 어떻게 자신만의 컬러를 팀에 이식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최근 벌어진 유사한 사례는 Arch Enemy의 케이스였다고 본다. 혹사와 무리로 인해 팀을 나가게 된 전임 보컬리스트 Angela Gosow의 뒤를 이은 Alissa White-Gluz는 초반의 의혹을 깨끗이 지우고 이제 밴드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번 내한을 다녀온 팬들의 찬사를 들어보라). 그와 비교했을 때, Kamelot의 [Silverthorn]은 졸작은 아니었지만, 웅장한 서사만을 부각하려 했던 탓에 보컬과 밴드가 겉도는 듯한 인상도 남겼던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Haven]은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만큼, 멤버들의 케미는 나아졌다. 그와는 별개로 여전히 ‘theatrical’의 유산은 강하게 감지되고, 이 끈을 놓는 순간 이 밴드의 호흡은 멈춘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Thomas Youngblood와 멤버들은 새 체제가 과거와 완전히 일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보컬의 펀치력은 줄었지만, Tommy의 톤에 맞는 곡들로 조금씩 조율해나가는 곡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프닝 트랙 ‘Falling Star’에선 Thomas가 무리하게 내러티브를 확장하며 그 위에 보컬을 씌우려는 태도를 버리고, 곡을 가지고 놀던 Seventh Wonder 시절의 Tommy를 신뢰하고 있음이 명백하게 캐치된다. 안전 지향적인 작전일 지도 모르겠지만 Thomas의 기타와 Oliver Palotai의 키보드가 치고 나가는 ‘Insomnia’를 듣게 된다면 밴드가 선택한 전략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입증된다. 과도한 몰입을 억제하는 탓에 심플하게 느껴지는 이 곡은 밴드가 앞으로 추구하게 될 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오케스트레이션 깔린 ‘에픽’한 곡은 어떤가. 유럽과 미국의 색채를 동시에 품고 있는 ‘Citizen Zero’는 Tommy가 마음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압축되고 정제된 연주는 여전히 Kamelot이 프로그레시브메탈 시장에서 한 지분을 차지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자신들이 뭘 연주하는지도 모르는 채, 성층권을 돌파해 우주로 진격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고 착각하는 최근의 몇몇 네오-프록메탈 팀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좀 더 모던한 맛을 내는 ‘Veil of Elysium’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묵직한 한 방을 선호한다면 이 곡이 마음에 들 것이다.

스페셜 게스트가 들어온 곡들을 먼저 검토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Kamelot은 항상 그 게스트 진용만으로도 풍성함을 주는 밴드였지 않은가. Delain의 Charlotte Wessels가 보컬 피처링으로, Nightwish의 Troy Donockley가 틴 휘슬로 참여한 궁정풍 발라드 ‘Under Grey Skies’에 대해서는 호오가 엇갈릴 수 있다. “트렌드를 놓친 길 잃은 아이”라는 반응도 예상되고 “Charlotte과 Tommy의 콤비가 잘 어울린 서정성 있는 트랙”이라 옹호하는 글도 볼 것만 같다. 이미 언급해버린 Alissa는 욕심 많게도 두 곡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로울링과 미들 템포의 진행이 기묘한 엇박자를 내지만 또 오묘하게 어울리는 ‘Liar Liar(Wasteland Monarchy)’는 개인적으로 [Haven]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하나의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후반부에서 Alissa는 기막힌 클린 보컬을 들려주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이 여성, 매력 터진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는 밴드 역사에 기록될 그루브를 뿌리는 ‘Revolution’이 아닐까 한다. Kamelot식 메탈코어인 이 곡은 확실히 기존 팬에게 당황스러울 시도일지도 모른다. 아마, 공연장에서라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결론짓자면, 중도주의와 적절한 실험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보다 곡의 임팩트가 나았다는 평을 함께 적어두고 싶다. 약간은 더 ‘아메리칸 스타일’로 축이 옮겨오지 않았냐는 비판(혹은 칭찬)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혹시 잊고 있진 않았나? 이 밴드 원래 미국 출신이다. 그것도 저 남부 플로리다.

(3.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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