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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a Marling: Short Movie

 

가끔 Laura Marling은 길을 잘못 찾아 현대로 불시착한 1세기 전의 어느 프랑스 문학도처럼 보인다. 가사엔 숱한 은유와 알레고리가 가득하고, 그것을 품고 공중으로 비상하는 노래 역시 농도 짙은 아우라를 흩뿌린다. 1990년생으로 이제 25세에 불과한 이 싱어송라이터의 음반은 이번에도 범상하지 않다. [Short Movie]는 그녀의 다섯 번째 풀렝스이고, 전작 [Once I Was an Eagle]은 대선배 Joni Mitchell의 작품에 대자면 적어도 [Ladies of the Canyon] 정도의 위치에 오를 만큼 호평과 찬사를 일궈냈다.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그녀가 이 음반을 녹음하며 거주했던 곳은 대서양 건너의 L.A.이고, 이 음반 [Short Movie]는 그녀가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인구 1200만 명이 거주하는 메트로폴리스에서 단지 10명 남짓한 사람만을 아는 상태” 속에서 쓰이고 완성되었다. 예상했다시피, 이 앨범의 키워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낯선 곳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한다는 것”, 즉 ‘고독(loneliness)’이다.

곡 제목을 보면 그가 음반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윤곽이 잡힌다. ‘Warrior’(전사), ‘False Hope’(헛된 희망), ‘Walk Alone’(홀로 걸어라) 등등… Laura는 날마다 가면을 쓰고 행해지는 저 대인관계의 허망함과 단절감, 그리고 무용함에 대해 털어놓는다. 심드렁한 어쿠스틱 반주를 배경으로 더 시니컬하게 읊조려대는 앨범의 오프닝 트랙 ‘Warrior’의 가사를 잠시 확인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내 위에 타려고 한다
그는 홀로 맞이하고 싶지 않은 전장과 맞닥뜨렸다
나는 몸을 세우고 흔들어 그를 등 위에서 떨어뜨렸다
그는 무릎이 꺾인 채 피웅덩이 길로 굴러 떨어졌다
그래, 난 더 이상 당신의 말이 아니야
당신은 내가 찾는 전사가 아니야
당신이 나와 함께 뭘 하고자 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는 당신의 목표물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수 없어
차라리 네가 믿는 주님에게 기도해라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게 당신을 이롭게 할 것 같지가 않아
난 더 이상 당신의 말이 아니야
당신은 내가 목숨 바칠 전사가 아니야
그러자 그는 고독에 몸부림치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내가 확고하다고 판단했던지 그는, 일순간 칼로 내 다리를 베었다
이 피웅덩이 길을 따라가라
네가 있는 이 숭고한 길이 우리 모두를 지옥으로 인도할 거니까
나는 황무지를 달리는 말
내가 찾는 전사는 어디에 있을까

Laura Marling – ‘Warrior’

 

이 곡은 Laura가 그간 발표했던 곡 중에서도 유독 불길한 축에 든다. ‘말’과 ‘전사’로 인간관계를 빗댄 것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장면도 그렇다. “네가 있는 이 숭고한 길이 모두를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라 냉소하는 대목은 일순간 사르트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세상을 ‘황무지’로 비유한 대목에서는 결국 인구 1000만이 넘어가는 대도시의 분주함은 결국 “아무것도 행해지고 있지 않은 저 허구적인 인간관계를 무의미한 행동들로 은폐하려는 수작”임을 밝히고자 한다. 그렇다. 세상은 누가 줄기차게 부르짖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앞날’이 있는 잠재적 낙원이 아니다. Laura의 세상까지 갈 필요 없이 당장 이곳만 둘러봐도 그렇지 않나. 어설픈 희망의 나팔을 불어대거나 섣부른 봉합을 시도하는 건 저기 브라운관에 종종 나오는 3류들이나 하는 짓거리지.

그러나 그런 메시지를 낱낱이 해독하지 않아도, Laura의 신보는(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일례로, “1-2-3-4”를 외치며 흥겹게 시작하는 저 ‘Strange’는 어떠한가. 이 곡에서 Laura의 보컬은 마치 Woody Guthrie의 곡에서나 들을 법한 ‘음의 분절감’과 대면하게 해주는데, 이런 대목만 보아도 Laura가 음악적으로 계속 ‘포크’라는 장르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Neil Young의 곡을 리메이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닌 ‘Don’t Let Me Bring You Down’의 락킹한 반전은 어떤가. 그러나 이 음반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갖는다. 완전히 1960~70년대 포크의 분위기를 내는 ‘Divine’, (그렇게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Joni Mitchell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주처럼 들리는 ‘Short Movie’를 듣게 되면 말이다.

[Short Movie]는 Laura가 처음으로 프로듀스를 맡은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미를 풍겼던 전작들과 비한다면, 이번 음반은 약간은 거칠고 성긴 맛도 느껴진다. 곡들마다 보컬이 들어가고 나가는 깊이도 달라졌고, 연주의 질감 역시 트랙들마다 차이가 있다. 누군가 토로했던 것처럼 이번 음반에 아쉬운 점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런 지점들이 어쩌면, Laura Marling이 나아갈 행보를 살짝 보여주는 것은 아닐런지. 단연코 그녀의 디스코그래피 중 처지지 않는 위상을 차지할 만하다. 게다가 이 브리티시 혈통을 가진 포키는 아직 25세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 뮤지션으로부터 기대해도 좋을 것인가. 향후 패러다임을 바꿔서 다른 장르를 개척(마치 Joni Mitchell이 그러했듯이)해도 실패하지 않을 것 같고, 포크의 원류에 더 파고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자신의 독(poison)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녀 외에 그 누가 해도 이런 맛이 나지 않을 테니까. 앨범의 플레이가 멈추는 그 순간에도 이 멜랑콜리의 홍수는 그치지 않을 것만 같다. 이 감흥이 쉽사리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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