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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Real Life

블록버스터와 아트 무비, 스릴러를 섞은 펑크 마스터피스

1977년, Howard Devoto가 Buzzcocks를 탈퇴하면서, 이 위대한 포스트펑크 밴드의 서막은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전 소속 밴드와는 다른 무엇이었다. 어떤 열혈 펑크족이 당시 그의 희망사항을 들었다면, 조용히 그에게 걸어가 유리병을 냅다 머리에 꽂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플랜은 Buzzcocks의 팝 감수성을 그대로 살리되, 뉴웨이브의 매끈한 무드와 프로그레시브의 장엄함, 아방가르드의 기운까지 함께 가져가려는 원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란? 욕심이 역량을 앞선 채 존재했던 그 수많은 병신 같은 밴드들을 물리치고, Magazine은 ‘펑크 히스토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허나 [Real Life]는 어찌 보면 애매 그 자체인 음반이기도 하다. Sex Pistols가 펑크의 전부인 사람이 듣기엔 심심하고, 뉴웨이브나 신스팝 마니아가 사랑하기엔 지나치게 굴곡이 심하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장르와 장르 사이 외벽을 붕괴시키고, 고고한 척/심각한 척 철학자의 표정을 짓기도 하니 직관적으로 피부를 때리는 펑크 싱글을 바랐을 락팬에게는 부담스러운 앨범이다. Buzzcocks의 팝적 감수성을 따왔다고 편의상 말하긴 했지만 ‘Shot by Both Sides’를 들으며 신나는 얼굴을 하기란 억지로 끌려간 조카의 학예회를 보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과 비슷하게 힘든 일이다.

그러나 처음 두 곡 ‘Definitive Gaze’와 ‘My Tulpa’가 뿜어내는 펑크 역사상 가장 독자적인 감정의 흐름을 보라. 이건, The Clash도 하지 못했던 업적이다. Roxy Music에서 David Bowie로 넘어갔다가, The Stooges로 회귀하는 저 예측불허의 등락이란? 펑크 역사상 ‘최고의 3분’으로 꼽힐 만한 ‘Recoil’이 만들어내는 저 서스펜스는? 블록버스터와 아트 무비, 스릴러를 섞은 듯한 이 기묘한 명반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마치 펑크란 인생을 으깨고 다져버리는 혈기로만 가득한 생명체가 아님을 말하듯, [Real Life]는 냉정한 혈류와 복잡하게 꼬인 신경을 드러내는 1978년의 펑크 변이종이다. 밴드는 그 이후로 다시는 이만한 작품을 주조해내지 못했지만, [Real Life]가 나온 그 순간만큼은 펑크의 미래는 세인들의 예상범위 바깥으로 연장되었다. 그만큼 영국 펑크락의 잠재력은 그 자신도 다 알지 못할만큼 풍성했고 강렬했다. 밴드 멤버인 우리만 앞날을 볼 수 있다는 듯 청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저 도발적인 재킷의 음반이 그 증거다.

음반은 여러 곳에서 ‘클래식’으로 거론되었는데, 한국에서도 널리 읽힌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의 한 페이지에서도 리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음반의 시그니처 송 ‘Shot by Both Sides’는 2001년 ‘Mojo’가 조사한 ‘100곡의 펑크 명곡’에서 78위에 랭크되었다.

4.5 Stars (4.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1 Comment on Magazine: Real Life

  1. 팡크의 스트레이트한과 프로그레시브의 초현실적 아우라가 공존하는 매우 독특한 앨범이죠. 펑크와 포펑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자기 나름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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