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Ólafur Arnalds & Alice Sara Ott: The Chopin Project

옛 것을 새 것처럼 들리게 하는 것도 능력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 수록 예전에 접했던 것을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이 농담삼아 “결국 나중에는 들을 게 클래식 밖에 없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최근 공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음반장의 시디를 뒤져도 별로 듣고 싶은 음악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을 때 무심코 집은 Glenn Gould가 연주한 ‘Bach: Goldberg Variations’ 같은 곡은 듣자마자 방금 전의 짜증을 씻은 듯이 지워주면서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찾게 한다. 그러고보면 다들 어린 시절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음악 학원에 가본 경험은 한번 쯤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학교 음악 시간이라던가. 우리는 일생 중 다른 어떤 장르의 음악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일찍 접한다. 반면 클래식 음악은 고상하고 지루하며 접근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도 있다. 근데 의외로 광고의 배경음악 등에서 주로 삽입되는 곡은 거의가 클래식이다. 아무튼 클래식은 가깝고도 멀기도 한, 기묘한 음악이다.

아이슬란드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Ólafur Arnalds는 어린 시절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가졌다. 그의 10대 시절은 메탈 키드였지만 종종 가는 할머니 댁에서 흘러나오는 Frédéric Chopin을 들으면서 자랐다. 차츰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고 음악에 몰두하게 된다. 나중에 Chopin의 소나타와 함께 할머니를 떠나 보낸 Arnalds는 향후 클래식 작곡을 배우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음악가 Arnalds의 궤적을 보면 다양한  방식의 녹음기술과 여러 실험적인 시도들을 해왔음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유년기의 경험이 그의 음악적 목표를 설정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Arnalds가 독일-일본계 혼혈 피아니스트 Alice Sara Ott에게서 큰 영감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Ott 또한 “음악에게 있어서 언어는 중요치 않다”는 본질을 일찍부터 깨닫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만약 Chopin이 현대에 살아 있었다면 어떤 음악을 했을까? Ólafur Arnalds와 Alice Sara Ott의 [The Chopin Project]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Arnalds는 프로듀서로서 Chopin 원곡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21세기에 어울리는 해석과 감성을 적절하게 담는데 주력하고 있다.  Ott는 작년에 나왔던 [Scandale] 같은 파격적인 모습보다는 훨씬 정적이면서 내면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1번 트랙 ‘Verses’와 7번 트랙 ‘Written In Stone’은 원곡인 ‘Chopin: Piano Sonata No. 3 in B Minor Op. 58 – III. Largo’를 해체한 뒤 미니멀하고 세련된 편곡을 집어넣어 체임버팝을 듣는 듯한 기분을 준다. 4번 트랙 ‘Reminiscence’는 구슬픈 스트링 선율이 들어가 원곡 ‘Chopin: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op. posth’ 보다 진한 감성을 담았으며,  5번 트랙인 ‘Nocturne in G Minor’에서는 샘플러와 노이즈가 삽입돼 마치 낯선 도시에 있는 듯한 적막함과 그리움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6번 트랙 ‘Eyes Shut, Nocturne In C Minor’은 Chopin의 원곡과  Arnalds의 곡이 합쳐진 곡으로 Ott의 정갈한 피아노와 Arnalds의 신디사이저, 현악 5중주의 조합이 늦은 밤에 듣기 안성맞춤인 앰비언트 음악으로 딱이다. 마지막 9번 트랙인 ‘Prelude in D Flat Major (“Raindrop”)’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빗방울 전주곡’으로 무게감 있는 반주가 곡이 끝날 때까지 귀 기울이게 한다. 정말 한 권의 그림책 같은 음반이다. 레코딩에는 아이슬란드의 여러 스튜디오와 콘서트 홀을 오가며 작업했고, 음반 마스터링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음악가 Nils Frahm이 참여했다.

[The Chopin Project]는 최첨단의 녹음 기술을 적극 사용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녹음 방식도 병행하면서 진행되었다. Arnalds의 의도대로 19세기 피아노가 가진 질감과 철학, 존경 그리고 지금 시대의 감수성까지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당분간 클래식 음악이 듣고 싶을 때면 꼭 이 앨범이 생각날 것 같다. 한 곡만 듣기 보다는 전체를 플레이하며 듣기를 권장한다. 한 밤 중에 듣기에도 좋고 아침 햇살이 들 때 들어도 적절하다. 만약 Chopin이 이 광경을 본다면 꽤 흡족해 하지 않았을까?

4 Stars (4 / 5)

 

About 김종규 (14 Articles)
이명과 여기저기에서 글을 씁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1 Comment on Ólafur Arnalds & Alice Sara Ott: The Chopin Project

  1. 글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Q님~ :)
    쇼팽도 좋고, 글렌 굴드의 Bach: Goldberg Variations도 진짜 좋아요~~
    올라프 아르놀즈도 알고 있던 뮤지션이지만 저 위에 걸어두신 Verses는 처음 듣는데
    매력만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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