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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ye: Woman

소피스티팝 리바이벌의 모범 답안

과거에 유행했던 문법의 재현은 기성 음악팬들을 기쁘게 한다. 전에 경험했던 것을 마주함에 따라 젊은 시절의 추억도 복원되는 까닭이다. 이 연유로 복고는 어른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내며 다시금 인기를 얻는다. 최근 소울, 디스코, 딥하우스 등이 리바이벌 붐을 형성하는 상황에서 소피스티팝(sophisti-pop)의 옅은 되살림은 유독 각별하다. 신스팝, 락, 재즈, R&B 등이 혼재된 야릇한 세련미를 특징으로 했지만 이 장르의 산파 역할을 했던 뉴웨이브 열풍이 시들해지면서 빠르게 쇠락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양식임에도 향유된 폭과 기간이 넓고 길지 않기에 오늘날의 재생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소피스티팝 재림을 도모하는 계통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Rhye다. 프로듀서 Robin Hannibal과 보컬 Michael Milosh로 이뤄진 이 듀오는 장르의 특성인 복잡성을 말끔하게 구현한다. 또한 소피스티 팝의 편성 특징인 관악기 파트를 거의 전 곡에 입힘으로써 전통은 물론 그 시절의 향취도 살린다. 모든 연주를 실제 악기로 처리해 따뜻한 질감도 나타낸다. 현악기를 적극적으로 들여 서정성을 가미하는 것은 1980년대와 다른 이들만의 개성이다. 일련의 강점들을 내세운 Rhye는 음악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데뷔 앨범 [Woman]으로 자신들이 소피스티 팝의 독자적 존재임을 힘 있게 주장한다. 질박하지만 정제된 사운드, 귓가를 간질이는 것 같은 은근한 멜로디를 앞세워 장르 특유의 세련된 대중성을 훌륭히 나타내 보인다. 또한 타이틀처럼 여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관된 콘셉트는 서정미에 힘을 싣는다. Michael Milosh의 중성적이며 농염한 음성은 노랫말을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코러스를 겹치거나 얇게 층을 내는 공정을 거친 보컬은 아련함을 증대하기도 한다. 곳곳의 클래식 접근은 왕년의 소피스티팝 그룹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한다.

앨범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사랑에의 갈구를 요란스럽지 않게 표하는 것이다. 자기는 당신의 허벅지 흔들림에 홀리고 한숨 소리에도 홀리는 바보라는 말로 시작하는 ‘Open’은 차분한 보컬과 셈여림을 반복하는 현악기를 통해 사랑을 이어 가고 싶은 간절함을 어필한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면서 어서 사랑을 나누자고 재촉하는 ‘Verse’는 느린 리듬과 끈진 현악기 연주가 가사를 역설적으로 전달한다. 여름날의 애틋한 기억을 포근한 색소폰 연주에 이입한 ‘One of Those Summer Days’, 오직 ‘woman’이라는 한 단어를 되풀이하지만 침착하면서도 끈기 있는 가창으로 온전한 유기성을 형성하는 ‘Woman’도 절실한 심경을 이야기한다. 이들 노래에서는 Rhye가 다운템포 성향도 추구함을 확인할 수 있다.

Rhye는 정적인 분위기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떠나지 말고 곁에 머물러 달라고 청하는 ‘The Fall’은 소프트락과 애시드재즈를 오가는 듯한 절제된 그루브를 표출하며, 이별을 직감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넌지시 말하는 ‘Last Dance’는 신스팝과 펑크(funk)의 성분을 조금씩 조합해 탄력을 내보인다.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가 오밀조밀하게 어울린 ‘Shed Some Blood’, 도입부의 하프 소리로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 뒤 신시사이저 루프와 관현악기의 짧게 끊는 연주로 통통 튀는 느낌을 내는 ‘3 Days’도 경쾌하다. Rhye는 댄스곡에서도 난잡스럽지 않게 품위를 유지한다.

앨범은 고른 찬사를 누렸다. 십여 개의 매체가 10점 만점 기준 8점 이상을 매겼고 연말 결산 리스트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Woman]의 완성도와 예술성이 모두 뛰어나다는 것을 이르는 지표다. 다이내믹하거나 시끄럽지 않음에도 Rhye는 충분히 ‘핫’했다. 이들은 흘러간 추억의 장르를 훌륭히 복원했으며 다운템포와의 접목, 살가운 실제 연주를 통해 독자성까지 나타냈다. 보컬이 남자라는 사실에 놀랐다면 멋스러운 음악에 더욱 놀랄 것이다. 전율이 따라오는 고급스러운 과거의 재현이 이 앨범에 담겨 있다.

4 Stars (4 / 5)

 

About 한동윤 (27 Articles)
음악 듣고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툴툴거리지만 하루 대부분을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꾼다. 라면을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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