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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JD2: Deadringer

고풍과 뛰어난 연출력이 빛나는 얼터너티브 힙합

머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던 사내가 눈을 뜨고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난 기억을 헤집는다. 손바닥에 적힌 의문의 숫자,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뱉은 토사물에서 나온 하나의 열쇠, 이것을 본 그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어디론가 달려간다. 한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손바닥에 쓰인 것과 같은 숫자가 적힌 화장실에서 테이프를 발견한다. 그것을 갖고 옥상으로 올라온 사내는 테이프를 들으며 누군가와 교신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검은 망토에 천으로 된 흰색 가면을 쓴 집단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썼다는 것을 회상해 내더니 다시 고통에 빠진다. 그런 그를 향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집단의 일원이 다가와 삽으로 머리를 내려쳤고 사내는 힘없이 쓰러진다. 그리고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가면과 모자를 벗는다. 그는 다름 아닌 사내였다.

이 스토리는 미국의 디제이이자 프로듀서 RJD2의 데뷔 앨범 [Deadringer]에 수록된 ‘The Horror’의 뮤직비디오 내용이다. RJD2가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영상은 첩보 영화와 스릴러물을 합친 구성, 놀랄 만한 반전으로 음악팬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자기를 공격한 사람이 알고 봤더니 자신, 혹은 똑같이 닮은 사람(dead ringer)이었다는 결말은 제목처럼 호러 그 자체였다.

영상도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된 곡 또한 일품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져 온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대사와 단어의 나열, 사이렌처럼 윙윙 울리는 무그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 침잠과 융기를 반복하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뮤직비디오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스코어였다.

반드시 영상을 먼저 접해야 공포감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맛을 증대하기에 좋았지만 곡만으로도 무섭고 섬뜩한 기운은 전달됐다. 채집한 몇 개의 음원과 시퀀서를 이용한 제작 방식은 평범하다고 할 형태였으나 RJD2는 거기에 명확한 기승전결의 구도를 부여해서 듣는 이의 상상력을 부추겼다.

특정한 광경을 떠올리게 하고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The Horror’는 1990년대 중후반 팝 음악을 강타했던 트립 합의 장쾌한 귀환, 얼터너티브 힙합의 또 다른 양상 출범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갖가지 음악 조각들을 모아 주조한 그의 곡은 하지만 어떠한 장면이나 풍경을 묘사하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음원들을 연결하고 짜 맞춰서 새로운 곡을 만드는 힙합 작법의 근원을 향한 열띤 회기였으며 그렇게 완성한 음악이 추상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실제 연주를 통해 반주를 만든 것처럼 아날로그 정서를 내보일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한 실험이었다. 턴테이블 스크래칭을 최소화하고 보컬 샘플을 빈번하게 곁들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 앨범은 소울을 재해석하고 예스런 흥을 구현하는 데에도 몰두했다. ‘Good Times Roll Pt.2’, ‘Work’, ‘Smoke & Mirrors’는 고전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 샘플을 투입해 노래들을 힙합풍으로 색다르게 구성하면서 원곡과는 또 다른 활기와 즐거움을 제공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몇몇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 의해 딥 펑크(deep funk) 리바이벌이 미미하게 행해지고 그보다는 뒤에 훨씬 더 큰 규모로 네오 소울 흐름이 만들어지면서 본류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을 비교했을 때 RJD2의 이러한 표현은 무척 각별했다. 힙합 프로듀서가 자기 방식으로 힙합 안에서 고전을 복구하는 행동을 취한 것은 조금은 이례적이었다. 그의 R&B, 소울에 대한 애정은 이후 앨범에서도 샘플링 기법으로 재차 확인되었으며 실제 보컬리스트를 섭외한 네오 소울로 연결되었다.

RJD2는 또한 동료 래퍼들을 초대해 [Deadringer]를 랩 음반으로도 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솔로 데뷔 전에 몸담았던 힙합 팀 MHz의 래퍼들 Copywrite와 Jakki 등이 목소리 출연을 함으로써 힙합 마니아들의 보편적 선호를 아우르는 것을 도왔다. 이는 다른 시각에서는 인스트러멘틀 곡으로 인해 형성되는 미묘한 대기를 누그러뜨리는 방편이기도 했다.

앨범은 이러한 요소들의 총합으로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여기에는 트립 합이 있으며 소울과 펑크(funk), R&B, 힙합이 존재한다. 게다가 각각의 연주곡은 이후 광고, 영화 등에 쓰이며 라이브러리 레코드로서도 활용도를 높였다. 여러 소스를 유기적으로 연결, 배합한 치밀한 설계와 연출력은 RJD2의 비범함을 설명하는 기본 사항이었다. 경외감을 들게 하고 희열을 안기는 얼터너티브 힙합 앨범, [Deadringer]는 바로 그것이었다.

(4.5 / 5)

 

About 한동윤 (27 Articles)
음악 듣고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툴툴거리지만 하루 대부분을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꾼다. 라면을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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