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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 Stereolithic Riffalocalypse

1970년의 사이키델릭, 1990년의 그런지, 그리고 2010년의 스토너

정말 애매한 저 3류 공상과학 소설 표지 같은 이미지를 보라. 도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재킷을 만들었으며, 또 저 안에 담긴 내용물은 어떤 폐기물일까. 더구나 저 괴상망측한 타이틀은 어떤가. 자신들이 만든 단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은 불가하지만 아마 ‘stereolithic’은 ‘입체인쇄술(stereolithography)’에서 따 온 것처럼 보이고, 다음 단어 ‘riffalocalypse’는 필경 ‘리프(riff)’와 ‘묵시록(apocalyse)’의 조합이리라. 이를 토대로, ‘입체적으로 들리는 리프의 향연(누군가에겐 반드시 지옥)’이라는 해독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음악보다는 ‘발리우드’로 더 알려진 나라 인도 출신의 헤비니스 그룹이라는 사실.

역한 첫인상, 괴이한 앨범 제목, 인도 헤비메탈 그룹. 자 하나 나오기도 힘든 가능성 셋이 결합했다. 당신의 예측이 어떠한지 내기를 걸어보자. 예전에 봤던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기 연민 반, 혐오감 반으로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얻는 쾌감은 예상했던 순서도를 거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전혀 기대하지 않고 들었을 때, 눈이 동그래지면서 집중했던 경험들, 다들 몇 번씩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리뷰는 바로 그러한 경험에 대해 쓰는 것이다.

단언컨대 Shepherd의 데뷔작 [Stereolithic Riffalocalypse]는 놀라운 음반이다. 인도 밴드치고 잘한다거나, 탈-아시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는 클리셰가 아니다. 최근 헤비니스 시장의 거대한 축인 스토너메탈과 슬러지메탈을 충분히 체화한 상태에서, 밴드는 Alice in Chains와 Soundgarden을 적절히 결합해내고 있는데 그 아웃풋은 본토 밴드의 최상위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모르고 듣는다면 정말 미국 신인 밴드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헤비니스의 컨벤션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동시에 노련미까지 풍긴다고 착각할 만하다. 그 중 헤비 리프의 정점이라도 찍겠다는 듯, Black Sabbath부터 Electric Wizard의 장점만을 쏙쏙 빨아들인 ‘Crook’, ‘Black Cork of Armageddon’은 가히 압권이다.

부분적으로는 Melvins의 유머와 Clutch의 쫄깃함, Tool의 괴팍한 치밀함도 느껴진다. 주지하다시피, 레퍼런스가 다양하다는 것은 언제나 양가적인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의 되도 않음을 되도 않는 다양성으로 위장하려는 것일 수 있고, 경우는 좀 다르지만 Beck처럼 괴물스런 청취에 힘입은 ‘자연스런 믹스처’일 수도 있다. Shepherd는 후자의 범주로 분류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실제로 얼마 전 웹진 ‘the Sludgelord’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들은 영향 받은 밴드로 쉽게 한 팀을 뽑지 못하겠다는 뉘앙스의 응답을 했는데, 음반의 스펙트럼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라고 본다(이런 물음이 어느 정도로 고역인지는 비슷한 종류의 질문을 받아본 자만이 안다).

그리고 당연히, 그에 머물지 않는다. ‘Bog Slime’에서 씩 웃으며 둠메탈의 아우라를 피워 올리는 것을 들으면, 또 고전적 사이키델리아에 대한 경의를 보내는 마지막 트랙 ‘Stalebait’를 감상하고 있자면 이들이 언제 이렇게 광대한 음악들을 흡수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 된다. 진짜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건가. 197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활약하던 사이키델릭 밴드가 1980년대 헤비메탈과 1990년대 초반 그런지의 샤워를 받은 뒤 사라지고, 약 20년 후 인도에서 출현한 게 아닌가. 참고로 내겐 현재까지 Sleater-Kinney의 복귀작과 함께 올해의 음반이다. 그러나 아직 3월이 다 가지도 않았으므로 설레발은 자제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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