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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h: Graveward

언제나 그랬듯이 대단하고 신기한 양반들

Sigh는 데뷔한 이래 한 번도 ‘평범한’ 블랙메탈 밴드였던 적이 없는 밴드이다. 1990년에 결성해서 Deathlike Silence에서 데뷔작을 낸 밴드인만큼 블랙메탈의 프론티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Sigh는 처음부터 당시의 컨벤션이었던 노르웨이 블랙메탈과는 상당히 차이가 큰 음악을 연주했다. 그나마 블랙메탈의 성향이 좀 더 두드러졌던 스타일이 [Ghastly Funeral Theater] EP까지의 음악이었다면, [Hail, Horror, Hail]부터는 현재 Sigh를 ‘아방가르드 블랙메탈’이라 불리게 만든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블랙메탈은 물론 데스메탈, 스래쉬메탈, 정통 헤비메탈, 포크, 재즈 등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고 있고(물론 이런 특성은 – 재즈까지는 아니더라도 – 밴드의 전작들에서도 보이기는 한다), 때로는 비장하다가도 일본풍의 분위기 – 내지는 B급 정서가 느껴지는 멜로디, 또는 ‘뽕끼’ – 를 언뜻언뜻 보여주고, 그러다가도 다시 유쾌한 락큰롤 사운드가 등장하는 등 소위 ‘chaotic’ – 사실 이 표현은 블랙메탈에 대해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 – 하다고 표현되는 사운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Imaginery Sonicscape]는 Sigh의 이런 ‘chaotic’ 사운드의 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A Sunset Song’에서 Beach Boys와 스케이트 펑크를 발견한 건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이경준 편집장이 신곡인 ‘Out of the Grave’를 소개하면서 Sigh를 가장 ‘관성을 거부하는’ 밴드라고 표현했던 건 그런 의미에서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게 [Imaginery Sonicscape]까지의 얘기다. [Gallows Gallery]는 키보드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한 앨범이었고, 동시에 색소폰(Yakuza의 Bruce Lamont가 참여했다) 등이 처음으로 등장한 앨범이었다. Mirai는 글로켄슈필이나 공, 타블라 등까지 악기로 추가하기 시작했고, [Hangman’s Hymn]부터는 물론 꾸준하게 ‘아방가르드’하지만 심포닉 블랙메탈이라 불러도 나쁘잖을 음악이 되었다. 물론 Sigh가 Dimmu Borgir도 아니고, 그런 대편성의 심포닉을 추구하는 밴드는 아니다. 쉽게 얘기하면 ‘단가 낮은’ 심포닉이 미니무그나 신서사이저 연주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고, 리프는 좀 더 정통 헤비메탈의 그것에 가까워졌다. 밴드는 [Graveward]를 ‘symphonic horror metal’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그런 얘기는 이미 이 때부터 나왔던 말이다. 아무래도 블랙메탈 사운드 등과 이어지는지라 꽤나 스래쉬한 면모가 있으면서도 정통 메탈 리프에 가까운 형태, 그리고 앨범의 기본적으로 기괴한 콘셉트, Mercyful Fate나 King Diamond 등의 리프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밴드의 음악은 더 스케일 크고 계속해서 다채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종전보다는 좀 더 안정적이고 덜 ‘chaotic’한 음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In Somniphobia] 앨범이 어느 정도는 Sigh가 그 동안 해 왔던 음악의 일종의 결산처럼 들렸던 건 그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Mirai도 작년 말의 인터뷰에서 [In Somniphobia]를 내고 밴드를 해체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하니, 아예 뜬금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Graveward]다. 어느 정도 [In Somniphobia]에서 그간의 입장을 정리했으니 이제는 선택이 필요하다. Sigh는 이 앨범에서는 – 아무래도 계속 해왔듯이 – [Hangman’s Hymn]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콘셉트를 빌린 ‘symphonic horror metal’라는 설명문구는 이를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사실 호러 영화를 운운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곡명들만 보더라도 지알로 영화의 명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지만 그 영화의 서사나 장면들을 Sigh의 곡들에서 떠올릴 수는 없다. 밴드는 그런 영화의 ‘분위기’를 빌려왔거나, 또는 그런 영화의 스타일을 음악에 반영하였을 것이다. 지알로는 빈틈없는 스토리텔링보다는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영상과 소재, 이미지로 특징지어지는 – 그리고 동시에 저예산영화답게 충분히 싼티나는 – 영화 스타일이다. Sigh가 섞어내는 ‘뽕끼’ 내지는 B급 정서의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제격인 셈이다.

당장 첫 곡인 ‘Kaedit Non Pestis’부터 이런 앨범의 면모를 보여준다. 새로 가입한 기타리스트 You Oshima(Kadenzza 출신답게 연주만큼은 화려하다)의 화려한 솔로잉으로 시작했다가 곧 호러 영화 스코어를 연상할 수 있을 신서사이저와 오르간 연주에 얹히는 블랙메탈 리프가 등장하고, 이는 곧 스래쉬 리프로 연결되지만, 정작 그 톤은 보통의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편이다. 아마도 Anthrax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만큼 유쾌하게 들리기도 한다. ‘The Molesters of My Soul’ 같은 곡에서는 둠 메탈 리프에 카바레풍의 멜로디가 어우러진다. 앨범의 모든 수록곡이 저마다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지만 덕분에 앨범을 관통하는 인상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된다. 전작들에 비해서 사실 녹음 상태가 그리 좋은 앨범은 아닌데(특히 믹싱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듣다 보면 이것조차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연주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겠지만, 그 살짝 먹먹한 느낌에서 예전의 ‘chaotic’을 살짝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이 Sigh가 좀 더 안정되기 전에 사운드에 은연중에 담아낼 수 있었던 ‘chaotic’한 느낌을 다시금 재현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변화라기보다는 좀 더 ‘날것이었던’ 시절의 스타일로 돌아가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물론 지금은 25년 경력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지라, 사실 개인적으로 앞의 시도가 정말 성공적이었는지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러면서도 밴드가 자신의 원래 모습만큼은 절대 잃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앨범을 Sigh의 앨범 중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아주 훌륭한 아방가르드 블랙메탈이라고 하는 데는 아무 무리가 없다.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는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Hangman’s Hymn]을 [Imaginery Sonicscape]보다 더 좋아한 사람이라면 이 앨범에 대한 얘기는 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밴드 최고의 앨범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이 앨범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덧붙임 :
Trivium의 Matt Heafy나 Dragonforce의 Frédéric Leclercq 등이 참여했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내 생각엔 ‘Dwellers in a Dream’에서의 Sakis(Rotting Christ)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게스트 뮤지션들은 별로 존재감이 없다. Sigh의 음악에 끼어들어서 자기 존재감 확보하기도 하긴 쉽지 않을게다. 특히나 Matt Heafy는… You Oshima의 연주에 좀 묻히는 것 같다.

3.5 Stars (3.5 / 5)

 

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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