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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fjan Stevens: Carrie & Lowell

(아직까진) 단연코 'Album of the Year'

* 들어가며: 앨범의 특성상 가사 분석 위주로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것은 ‘시작'(start)과 ‘끝'(end)에 대한 가슴 저미는 엘레지다. 선수치자면 이건 ‘올해의 음반’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한 뮤지션의 기록이다. 동시에 그 표피만 아는 독자들에게 이 레코드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달콤쌉사름한 유년시절에 대한 비망록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어머니가 이미 그와 함께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어머니’라는 이름은 자식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람에 따라 차이야 있을 테지만, 내게 그 단어는 ‘죄송스러움과 감사함, 말로는 다 토해낼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Sufjan에게 그 단어의 어감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는 이 앨범의 주인공(앨범 커버의 왼쪽)이자 어머니 Carrie로부터 3살 때 버려지는(그것도 비디오 가게에서)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Carrie는 음반의 또 다른 주인공 Lowell(현재 Sufjan Stevens의 레이블 대표)과 결혼했고, 그 셋의 길고 자세한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그 후 잠시나마 ‘짧고 행복한 순간’을 즐겼던 것 같다. 특히 오레곤으로 떠났던 여름휴가. Sufjan의 나이가 두자리가 되기 전 함께 갔던, 그 여행은 음반의 많은 곡들(‘Carrie & Lowell’, ‘Eugene’)을 통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제 다시는 갈 수 없게 된 여행이다. Sufjan의 어머니가 2012년 말 위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러 정신과 질환을 달고 살았고, 약물 관련 문제도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긴 서두를 통해, 이 음반이 전작 [The Age of Adz]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접근법을 통해야 했음을 인지했을 것이다. [The Age of Adz]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가장 이질적(노골화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힙합 비트의 도입, 프로그레시브 혹은 드림팝으로의 진화? 그와는 별개로 음악은 좋았지만)인 단면이자 포크가 어떻게 풍성한 사운드 지원을 받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작품(이를 두고 The Flaming Lips나 Radiohead를 열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꽤 정확한 지적이라고 본다)이었다면, 도저히 이번 음반은 그렇게는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이 음반이 다루고 있는 테마의 무게를 가늠해 봐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Carrie & Lowell]은 최대한 미니멀한 편성의 포크/바로크팝으로 채워져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마주한 다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첫 트랙 ‘Death with Dignity’부터 앞으로 진행될 분위기는 쉽게 연상된다. 꾹 참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듯 위태위태한 Sufjan의 보컬이 피아노를 비롯한 어쿠스틱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고, 절정부에 이르면 비장하면서도 압도적인 코러스가 제의의 한 장면을 구성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음반은 여동생의 자살로 발걸음을 떼는 Eels의 소포모어 음반 [Electro-Shock Blues]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잘 제어되는 듯 했던 화자의 정서는 그러나 두 번째 곡 ‘Should Have Known Better’에 이르러 해일이 되어 둑을 넘는다. “아무것도 바뀔 수 없었지/과거는 여전히 과거일 뿐/다리는 그 어느 곳에도 없어/편지를 썼어야만 했어/내가 가진 그 ‘텅 빈 감정’에 대해서 말이야” “과거는 과거”이고 “감정은 텅 비었다”고 했지만 어머니를 향한 분노와 증오는 이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웹진 ‘Pitchfork’와의 인터뷰에서 “이 음반은 ‘예술가적 기획’이 아니다. 이건 내 ‘삶’이다”라고 밝혔던 것처럼, Sufjan은 자신이 경험했던 죽음과 그것의 인정, 그리고 그 치유과정을 자신이 경험했던 그대로 보여준다. 만일 이 음반에 꽤나 자연스럽게 공감되고, 심지어 ‘내 지인의 죽음’인양 슬퍼져 흐느끼게 된다면 전적으로 그 까닭이다. 그리고 미리 써 두었다시피 Stevens는 조금씩 나아진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였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도 같은 ‘혈통’으로 이어져 있음을 털어놓는 ‘Drawn to the Blood’, “단지 당신과 가까이 있고 싶었어요”라고 적고 있는 ‘Eugene’에 도달하면, 죽음이란 어느 작가가 묘사했듯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곧 사라져버리는 객관적 현상”일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게 된다. 피가 흐르고, 살이 그 위에 붙어 있는 한 인간에게 죽음은 ‘의미부여’의 맥락과 항상 같이 가게 될 것이기에. 유독 ‘인간적’으로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 위에 얹힌 보컬은 가슴을 파고들며 긴 향기를 남긴다. 뭐, ‘짠함’의 측면에서라면 거의 가스펠이나 영가처럼 들리는 ‘Blue Bucket of Gold’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곡에서 그는 오레곤 인근에 위치한 옛 광산을 노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사와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던 대목은 ‘Fourth of July’다.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고, 직접적인 코멘트는 없지만 아마 이 기간을 전후해 가족은 오레곤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곡에서 과거 ‘오레곤 여행’은 현재 ‘어머니의 죽음’과 절묘하게 오버랩되고, Sufjan은 어머니 Carrie와 가상의 대화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가사를 썼다. 덕택에 곡의 서사는 풍부해졌고, 해석의 여지 또한 다양해졌다. 그리고 두 차례나 반복되는 인생사의 명징한 교훈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말. 그러나 그게 대책 없는 패배주의로 흐르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죽음의 뜨거운 열기’도 “인생사 가혹할 때든 아니든 잘 살아가라”는 메시지(비록 허구의 메시지이지만)를 꺾기는 힘들었던 게다. 누군가 자리를 뜨면, 항상 뒤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어쨌든 살아가야 하기에.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의 모호하지만 유의미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난 이 가사를 보며 그걸 떠올렸다. 그러니 감정이든 의지든, 기력이든 뭐든… 당신이 그걸 가지고 있다면 꼭 붙들고 놓지 말자고. 쓰러지면 지는 거라고. 그의 삶은 곧 우리의 ‘삶’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죽음의 기운이 뜨거운 열기처럼 퍼져나간다
당신이 숨을 거둔 밤이었다, 내 반딧불
망자들로부터 당신을 지키려면 뭐라 말했어야 할까?
차라리 그 7월 4일의 하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만하면 됐다, 얘야
내 작은 매, 왜 그리 우니?
너 틸라무크 숲 화재(주: 1933~1951년 동안 무려 1,440 제곱킬로미터의 삼림을 앗아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삼림 화재)로부터 배운 게 뭐니?
그 7월 4일로부터는?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되는 거란다

당신의 머리맡에 앉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게 가식이다. 마치 중학교 시절처럼
모든 게 허구였던, 그리고 미래였던, 그리고 그렇게 예측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지금의 난 어디 있는가? 이젠 사라져 버린 기억들

넌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내 작은 비둘기야
왜 그리 우니?
널 두고 떠나와서 미안하지만, 이게 최선이구나
그게 옳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작은 베르사유

병원 관계자가 시신을 모셔가도 되는지 물었다
작별의 인사를 하기 전, 하늘에 뜬 나의 별이
당신을 휘감아 칠지도 모르겠다는 되도 않는 생각을 해봤다

이제 괜찮아졌니? 내 잠자리야
달이나 함께 보자, 내 작은 아비(주: 아비목 아비과에 속한 오리와 유사한 새)야
왜 그리 우니?
인생사 가혹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어떻게든 잘 살아가면 되는 거란다

Sufjan Stevens – ‘Fourth of July’

 

5 Stars (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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