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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Waits를 들으며 비극에 대해 생각하다

찰리, 나 임신했어요
유클리드 거리에서 떨어진 더러운 서점 바로 위 9번가에 살아요
마약이랑 위스키도 끊었어요
남편은 트롬본을 연주하고 철도 일을 해요
날 사랑한다고
자기 아이는 아니지만 잘 키우겠대요
그이 어머니가 주신 반지도 내게 줬고요
토요일 밤이 되면 댄스파티에 데려가곤 하죠
주유소를 지날 때마다 당신 생각을 해요
아마 당신이 바르곤 했던 그 머릿기름 때문이겠죠
아직 Little Anthony and the Imperials 음반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누가 내 전축을 훔쳐가고 말았죠. 당신, 지금도 그 음악 좋아해요?
찰리, 난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행복해요
우리가 마약하느라 썼던 그 많은 돈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고차 매장을 하나 사서 누구에게도 팔지 않고
매일매일 느낌 가는 데로 골라 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찰리, 진실을 알고 싶나요?
사실 트롬본을 부는 남편 따위는 없어요
변호사 비용이 필요해요. 돈 좀 빌려줄 수 있나요?
그럼 나, 발렌타인 데이에 가석방될지도 몰라요

Tom Waits – ‘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

 

붐비는 인파, 전망 좋은 레스토랑과 와인, 가족과의 화목한 대화, 포장지에 감싸인 선물. 통상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생각할 때 더불어 떠올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어제와 같은 하루’일수도 있다. 또 어떤 이에겐 반복되는 비참이 도처에서 들리는 캐롤로 인해 더욱 잔혹해지는 날일수도 있다. 여기, Tom Waits의 카메라에 담긴 성탄절의 피사체는 그보다 한층 고독하고 처절하다.

노랫말을 잠깐 들여다보자. 어느 크리스마스, 찰리는 옛 애인으로부터 엽서를 받는다. 그의 기억에서 어렴풋해진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술과 마약을 끊었다. 나는 임신한 채 미네아폴리스에서 유쾌하고 자상한 남편과 잘 살고 있다. 그냥 가끔 당신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너스레를 떨던 그녀는 갑자기 울적해진 듯, 자신이 마약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혼자 마음대로 예상하기 시작한다. 어라, 행복하다더니… 이 여자가 왜 이럴까. 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사연이 뭘까.

찰리의 의문은 엽서의 끝자락에 와서야 풀린다. 팝과 락의 계보를 다 뒤져봐도 손꼽힐 만큼 오싹한 반전을 품었다고 해도 무방할 마지막 두 줄. 사실 남편이 없고 수감된 상태이며, 변호사비가 있어야하니 돈 좀 빌려줄 수 있어요? 그녀는 묻는다. 그래야 발렌타인 데이에 가석방될 거라며.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찰리의 눈앞에 당도한 편지는 연인들의 날로 알려진 발렌타인의 절박함을 호소하며 막을 내린다. 크리스마스에 도달한 지상에서 가장 구슬픈 글귀. 12월 24일 저녁. 누군가 징글벨을 부르며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화려한 도심을 걸을 때, Tom Waits는 그 시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저편의 세상을 노래한다.

놀랍게도 이 스토리는 철저하게 Tom Waits 본인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한때를 보냈던 그의 경험담을 잠시 들어보자(‘위키피디아’에 가면 원문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미네아폴리스에 있었고, 영하 200도는 될 만큼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이었죠. 어디서 구라를 치냐고 하겠지만, 신께 맹세할 수 있다니까요. 그날 친칠라 코트를 입은 두 명의 어린 매춘부가 나를 놓고 씩씩대고 있었어요. 걔들은 끽해야 13살이 될까 말까 했는데, 칼과 포크, 숟가락을 거리로 던져대며 싸워대고 있었죠.” 고작 중학생이나 될 법한 나이에 생존전투의 현장으로 밀려난 소녀들.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그 추운 겨울날 서로 드잡이를 해대는 모습. 이 현실 같지 않은 일화는 크리스마스로부터 관통해 나아가는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실은 가식과 기만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Tom Waits는 이에 “예술가의 영혼은 위장에 있다”고 주장하는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의 시를 접붙였고, 이 결합물은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순간으로 남았다.

허나 노래의 배경을 알고 곡을 들어도 궁금증은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왜 여자는 처음부터 진실을 공개하지 않았는가. 과연 찰리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을까? 우선 첫 번째 물음부터 해결해보자. 어차피 돈이 긴요한 상황이라고 말할 것이었다면 서두는 어이해 그리 장황했을까. 여자의 자존심이 발현된 거다. 아니다. 동정심을 구하기 위한 수작이다. 아니다. 은밀한 연모의 고백이다. 등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트롬본을 불며 자신을 댄스 파티로 데려가곤 한다는 ‘가상의 남편’이 나오지 않았다면, 감흥은 절반으로 줄었을지도 모른다. 찰리가 바르곤 했던 ‘머릿기름’, 함께 듣곤 했던 ‘Little Anthony and the Imperials의 음반’,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고차 매장’. 이 맥거핀들은 결과적으로 극적인 ‘수감 장면’을 위해 기능한다. 마약과 알코올. 혹은 그 비슷한 문제이거나 아니면 생계형 범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 편지를 썼을까? 변호사 비용을 동봉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신파 역시 고전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훌륭한 신파란 구구절절한 모든 이야기를 좌판처럼 펼쳐놓고 “어서 감동해!”라며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생략과 비약을 통해 독자를 예측하지 못했던 지점으로 몰아가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 점에서 이 곡의 우수성을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석방될지도 몰라요”라는 여자의 희망사항으로 가사를 마침으로서, 이 곡은 리스너들이 계속해서 ‘진짜 결말’을 상상해보도록 만들었다.

2014년 12월 24일 오후. 생활고를 겪던 50대 가장이 동대문구청사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매달 30만원의 정부보조금으로 살아온 그는 공공근로를 신청하기 위해 국가로부터 매달 받아오던 보조금을 포기했다. 그러나 지원자가 많았던 탓에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없었고, 결국 집세가 밀린 것을 비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의 몇 줄 기사로 짤막하게 처리된 이 사건은, 이 시대 비극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예증하는 상징이다. 현재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비극은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비극과는 다르다. 숭고하기는커녕, 일상의 중핵에 자리한 나머지 이제 무감각해져버린 비극. 사람들의 자연스런 감성마저도 사치성 소비재로 뒤바꾸는 이 풍토. 그 안에서 쓰레기가 되어버린 채 유령처럼 떠도는 비극. 그보다 무서운 건 비극이 쉽사리 잊히고야 만다는 것이다. 주변에 대한 작은 관심과 연민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잔인성의 시대. 어쩌면 송파 세 모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트롬본을 부는 남편 따위도 없이 발렌타인의 기적을 멍하니 기다리는 한 가련한 여인의 편지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 ‘고대대학원신문’에 연재했던 한 칼럼을 수정해 실었습니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8 Comments on Tom Waits를 들으며 비극에 대해 생각하다

  1. 저는 이분 음악은 자주 안듣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원에 가둬 놓으면 미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 양반 목소리 들으면 우울증 걸릴 것 같아요 ㅋ

  2. 내가 본 탐 웨이츠 관련글중 가장 멋진글…..

  3. 내가 본 탐 웨이츠 관련글중 가장 멋진글

  4. 내가 본 탐웨이츠 관련글중 가장 멋진글^^

  5. 솔직히 탐 웨이츠 음악을 많이 들어보진 않았습니다. 1집 [Closing time]이랑 6집 [Blue valentine]만 한참 예전에 들어봤네요. 그래도 ‘martha’만큼은 선명하게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그 절절한 음색과 슬픔에 사무치는 멜로디가 골수까지 파고들어오더군요. 언젠가는 꼭 각잡고 제대로 들어보고 싶은 뮤지션, 톰 웨이츠입니다.

  6. 그리고 톰 웨이츠의 이 노래랑은 상관없지만, 한 편의 아주 짦은 이야기를 읽은 듯한 느낌을 주는 노래로 Velvet underground의 ‘The gift’도 추천합니다. 8분대 노래고 계속 주절거리는데 가사가 아주 우화적인 한 편의 콩트임.

  7. 톰 웨이츠 팬입니다.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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