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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Morrison: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

그냥 보고, 믿고, 들어라

태생적으로 뭔 짓을 해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두고 ‘천재’라고 말하기도 하고, 세속의 눈으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기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일랜드가 배출한 불세출의 아티스트 Van Morrison이야말로 그러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탈-인간적인 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라. 켈틱의 정서가 섞인 소울을 기반으로 포크, 컨트리, 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재즈, 가스펠까지 대중음악이 축적해둔 모든 범주를 헤집고 다니는데, 이 분이 또 무서운 것은 그걸 완벽에 가깝게 예술로 구현해낸다는 점이다(그 점에서 확실히 ‘휴먼’은 아닌 것 같다. 아… 이렇게라도 질투하지 않으면 우리가 너무 불쌍하다).

히스토리는 대부분 알겠지만, 혹시 모르니 간략히 정리해본다. Them의 멤버로 커리어를 출발한 Van Morrison은 솔로로 데뷔한 이후 1968년 [Astral Weeks]에서 탐미주의가 무엇인지를 정의했으며(사실 그 이상을 내기도 힘들다), 1970년의 3집 [Moondance]에서는 대중음악이 그려낼 수 있는 한계지점이 범인(凡人)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증명했다. 뭐, 새 음반 리뷰이다 보니 구구절절 다 적을 수는 없지만, 1970년작 [His Band and the Street Choir], 1979년작 [Into the Music], 1988년작 [Irish Heartbeat] 등 그가 남긴 걸작(낮게 잡아 수작만 해도) 한 타스는 족히 될 것이다. 만약, 이 글을 통해 Van Morrison을 입문하게 된다면, ‘Allmusic’을 켜놓고 앨범 리스트를 확인한 뒤 그냥 초기작부터 깡그리 정주행할 것을 추천한다.

2015년 신작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는 그의 이력에서도 약간은 유별난 음반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발표했던 곡들을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듀엣으로 재편곡해 새로 녹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도입부에 거의 ‘용비어천가’를 날리며 Van Morrison에 대한 존경을 표했지만, 사실 난 이런 기획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비슷한 식의 음반들과 만나게 되는데, 채 비닐을 뜯기도 전에 필이 확 온다. “왠지 듣게 되면 실망할 것 같아.” 안타깝게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때마다, “저 음반을 듣지 않았으면 아티스트에 대한 모종의 판타지를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뒤늦은 후회가 동반된다. 그러나 이번엔 아티스트에 대한 마음 속 깊은 ‘리스펙’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 Van Morrison이잖아. 해주시겠지. 알아서 다 해주시겠지.

그리고 곡 리스트를 먼저 훑었다. 이 괴팍한 양반 같으니라고. 일단 유명한 곡(Van Morrison 곡 중 그런 곡이 어디 있겠냐만)이 보이지 않는다. 이거 완전 마니아 선곡이다. 첫 곡부터 그의 일대기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Hymns to the Silence]에 수록된 ‘Some Peace of Mind’가 아닌가. “이런 건 다 들어본 거 아니었나?”는 저 자신감, 그리고 삐딱함. 2014년 타계한 소울의 거장 Bobby Womack의 마지막 목소리와 더불어, 노래는 그야말로 비상한다. 음악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믿는 편인데, 요런 노래를 듣고 나면 믿음은 확신이 되어버린다. 전설적인 R&B 싱어 Mavis Staples와의 콜라보 ‘If I Ever Needed Someone’은 경건하게 만들고, George Benson과의 협연 ‘Higher Than the World’는 계산된 은은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은은함을 떠안긴다. 그뿐인가? Joss Stone과 부른 ‘Wild Honey’는 객의 역량을 120% 발휘하게 만드는 주인의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주인장, 맘 씀씀이도 곱다.

그러나 가장 귀에 꽂힌 트랙은 재즈 보컬리스트 Clare Teal과의 듀엣곡 ‘Carrying a Torch’인데, 싱거운 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곡이 생기를 부여받고 피어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누군가는 Van Morrison의 음악을 두고 “어른의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참으로 적절한 말이다. 30대가 넘은 사람에게, 왈칵 밀어닥칠 어떤 경관. 바로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정수다. 이름만으로도 추억의 한 공간을 열어준 Simply Red 출신의 보컬 Mick Hucknall과 호흡을 맞춘 ‘Streets of Arklow’는 도시의 어느 새벽과 마주하게 하고, Natalie Cole과 함께 한 ‘These Are the Days’는 한적한 티타임을 연상케 한다. 딸 Shana Morrison과의 듀엣 ‘Rough God Goes Riding’은 아무래도 뭔가 끈끈하다. 싫지만은 않은 그것. Mark Knopfler(1949년생으로 1945년생인 Van과 동년배다)와의 작업물 ‘Irish Heartbeat’는 같은 길을 걸어온 친구이자 동료에게 보내는 서로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해석이 맞을 것이다.

여러모로 사색에 빠지게 하는 음반이다. 늙어간다는 것, 일상의 반복이 주는 소소한 기쁨, 인간관계의 따뜻한 측면 등등. 미처 언급하지 못한 트랙들을 통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내길 바란다. 이런 음악이 있기에, 모두 아직은 더 행복할 수 있기를.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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