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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 강의 노래

A River Runs Through It

이 음반은 명패만 푸른곰팡이로 바뀌었을 뿐 일련의 ‘하나음악 시리즈’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나음악의 팬이라면 [겨울노래], [바다], [꿈] 등으로 연결되었던 시리즈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인터벌은 길었다. 마지막 프로젝트 [꿈]의 공개시점이 2003년이므로, 무려 13년 만에 대중 앞에 선을 보이게 되는 셈이다. 주변에 대한 세심하지만 예리한 관찰을 내세웠던 팀답게 이번엔 ‘강’을 집중적으로 스케치했고, 그래서 음반 제목도 [강의 노래]가 되었다. 팀의 정신적 지주 조동진이 키를 잡았고, 조동익, 장필순, 오소영, 박용준, 이규호, 이무하, 조동희, 한동준, 소히, 고찬용, 정원영, 송용창, 이경이 힘을 보탰다. 거기에 레이블의 뉴페이스 새의전부가 한 구간을 담당해 이 2CD 음반은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시리즈가 살아났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그 말이 먼저 하고 싶었다. 덧붙여 몇 개의 상념이 스쳐갔는데, 이 리뷰는 그 상념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어떤 이에게 강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이자 현재와의 비교대상이다. 장필순과 조동익의 ‘엄마야 누나야 + 오래된 슬픔 건너’가 그렇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유년 속의 강이 그렇게 간직되어 있다면, 현대의 강은 이해관계에 취약하다. 메워지고, 깎이고, 파헤쳐진 언저리에서 동요의 원 색채를 복원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세간의 여러 말들 속에서 ‘노스탤지어의 강’은 곧 ‘망각의 강’이 되어 증발하게 될 것이다. 이미 비슷한 사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둘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덤덤하다.

한편으로 강은 성찰과 사유의 계기이기도 하다. 팀의 헤드 조동진이 부르는 ‘강의 노래’다. 그에게 있어 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잊어버리는’ 무위(無爲)의 공간([조동진 4집] ‘물을 보며’)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14년 만의 신곡이지만, 그의 시야는 “이름 모를 숲을 지나 저문 들판을 지나 우리 떠나왔던 곳”에 맞춰져 있다. 우리도 모르는 새, ‘시(時)와 분(分)’으로 구획화되지 않는 저 영겁의 시간 속에서 강물은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이어졌다고 그는 말하는 것만 같다. 프로그레시브를 연상시키는 웅장한 편곡과 묵직하게 저 아래로 내리누르는 조동진의 보컬이 좌중을 압도한다.

또한 강은 서정을 촉발하는 흐름이다. 이규호의 ‘시냇물’과 조동희의 ‘유리강’이 그렇다. ‘시냇물’이 독특한 아카펠라로 시작하여 1980~90년대의 그 가요 분위기를 그대로 환기한다면, ‘유리강’은 좀 더 몽환적인 라인으로 출발해 마치 ‘안개 낀 것 같은 정경’으로 우리를 이끈다. 여러 장르에 얼굴을 비치는 조동희답게 이 곡에선 일렉트로니카를 외피로 택했다. 여운을 뿌리는 편곡은 박용준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베스트로 꼽는 이무하의 ‘돛’은 마지막 부분에 다 와서야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와서 강은 용서와 화해의 상징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겠다는 각인의 약속으로 남는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단출하게 읊조리는 이무하는 미처 잠들지 못한 저 4월의 아이들을 위안하고, “니 잘못이 아니라고” 감히 말해본다. 정작 중요한 건 저 떠들썩한 세간의 담화들에 있지 않다고 일깨우는 것처럼 들린다. 그 말이 맞다. 그에게 ‘돛’은 소박한 희망의 표식이자, 거대한 뭔가를 일궈내자는 ‘보여주기용 쇼’가 아닌, 떠난 자들과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 놓일 작은 다리이다.

뭐 꼭 이런 것들이 아니어도 좋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누구에게나 강은 특정한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풋내기 신입생 MT때 대성리에서 마주쳤던 차가운 새벽공기 속 풍경일 수도 있고, 기차가 달려들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일 수도 있으며, 출퇴근을 위해 매일 두 번씩 내려다보게 되는 이제는 무감각해진 일상 속 디스플레이일 수도 있다.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다. 음반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며 콘셉트를 파악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지류만 똑 따서 반복 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옴니버스 음반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게 옴니버스 음반의 장점을 퇴색시킬 정도라고 보지는 않기에 비판은 자제하고자 한다. 이 음반은 무엇보다 ‘삶 자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멈춤 없이 흐른다. 그 점에서 강과 유사점이 있다. 돌아보되 거스르지 말고 나아가라. 그 점에서 강과 운명이 일치한다. “푸르른 시간은/우릴 따돌리고 저만치/선한 웃음 머금은 채/넌 강물처럼 뚜벅뚜벅’이라 뇌까리는 정원영의 엔딩 트랙 ‘새는 걸어간다’를 들으니 더욱 얄궂음이 느껴진다. 어느 새벽에, 그저 멍하니 세 번 이어 들었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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