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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 Rose of Memory, Rose of Forgetfulness

책을 다시 읽어보고 들어볼 필요까지는 없겠지

Romowe Rikoito를 필두로 하여 (자기들 나름대로는 꽤 알려진)네오포크 밴드들이 참여한 이 앨범은 T.S. Eliot의 트리뷰트 앨범이다. Eliot의 ‘네 사중주(Four Quartets)’에 등장하는 장미 정원이 어떤 모티브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아무래도 Eliot의 작품에 나오는 이런저런 정원들 중에서는 가장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 , 저 붉은 장미의 모티브는 아마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앨범 제목부터가 Eliot의 첫 번째 장시로 알려져 있는 ‘Ash Wednesday’에서 따 온 문구이다. 사실 선배 뮤지션의 트리뷰트가 아닌, 작가의 트리뷰트 앨범을 봤던 기억은 별로 없으니 꽤나 흥미로운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네오포크 특유의 낭만성 – 내지는 회고성 – 덕분에 가능한 기획일 것이다. 어찌 보면 근래의 음악들 중에서는 가장 유럽적이면서도 회고적인 성향의 장르의 하나가 네오포크일 테니 이상할 것은 없다고 본다. 아이러니하다면 Eliot은 영국으로 귀화하기는 했지만 본래는 미국 태생의 작가라는 정도? 그런데, 적어도 내 짧은 지식으로는 Eliot은 본래 상징성과 (몰개성에 가까울 정도의)객관성, 단편성으로 사람을 고심하게 만드는 작가이니, 이를 음악으로 어떻게 구현했을지가 가장 궁금하다.

앨범은 크게 ‘The Recurrent End of the Unending’, ‘Landscapes’, ‘We Are the Hollow Men’의 세 챕터로 구성된다. Romowe Rikoito와 Sunset Wings의 공작인 ‘Bewangiskas Pintegas Pagaüsenis(프러시아말이라고 한다. 이 친구들이 쾨니히스베르크 출신이라 가능한 일일 것이다)’로 앨범이 시작되는데, 유일하게 Eliot의 특정 작품이 아닌 여러 작품들에서 이런저런 부분을 종합하여 만들어진 곡이라 하니, 어찌 보면 이 컴필레이션의 기획의도에는 가장 근접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절제된 여성보컬과 첼로, 기타가 중심이 되는 네오포크의 정형에 꽤 충실한 편이다. 좀 더 관조적인 스타일에 가까울 Embrace of Branches의 ‘I do not hope’도 듣다 보면 Michael Cashmore(Current 93)의 스타일에 상당히 닿아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은 두 번째 챕터인 ‘Landscapes’에서인데, 앞서 Michael Cashmore를 연상케 하던 부분은 그 정도를 높여서 Romowe Rikoito의 ‘Children’s Voices’에서는 더욱 Current 93의 스타일에 근접하고, Kratong의 ‘Red River/Virginia’에서는 심지어 미국적인 사운드까지 등장하면서 앨범을 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해 간다. 말하자면 첫 번째 챕터의 단편성이 확장되는 모양새인데, Eliot이 수많은 비유와 암시를 이어 나가는 복잡한 모습을 구현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을 일이다. 마지막 챕터인 ‘We are the Hollow Men’도 그 방향성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이색적인 Waldsonne의 ‘The Hippopotamus’는 냉소적인 가사에 블루그래스의 인상까지 풍기는 재미있는 곡이지만, 챕터는 다시금 네오포크의 전형으로 돌아간다. Volosy의 ‘April is the Cruelest Month’의 역설적인 여유가 청자에게 그나마 여유를 주는 편이다.

그렇게 치면 이 앨범은 T.S. Eliot의 트리뷰트 앨범이긴 하지만 Eliot의 글 자체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는 좀 불확실하다. 일단 이 글을 쓰는 나부터가 Eliot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기도 하지만… Eliot 특유의 ‘타자의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 하기’라는 기획에 이런 낭만성을 갖다 붙이는 것이 조금은 섣부르게 느껴진다. 그나마 사운드의 뒤틀림을 보여주는 ‘Landscapes’ 이외의 챕터는 탐미적이라는 느낌 외에 작가와의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Volosy가 마치 구원을 제시하는 듯이 앨범 막바지에 희망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기도 했다. 뭐, 후기의 Eliot에게서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나오기도 한다만, 그건 논외로 하기로 하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Romowe Rikoito의 곡들을 제외한다면 일련의 곡들에서 어떤 일관된 무언가(분위기일지도, 콘셉트일지도)를 찾기도 쉽지 않다. 어찌 보면 Eliot의 작품 자체가 주는 이미지에 집중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Eliot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일지는 잘 모르겠다. Ezra Pound와도 친한 양반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Eliot은 Pound보다는 좀 더 전통적인 형태의 서사에 중요성을 두었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숱하게 깔린 상징들이 글과 글 사이에 따라가기 힘든 도약을 집어넣긴 한다만, 그건 상징의 문제이지 서사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앨범의 기획 자체는 조금은 실패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앨범의 곡들 자체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다. 특히나 Neutral의 ‘The Hollow Men’의 분명한 공간감과 미니멀함이야말로 앨범의 기획에 가까이 가 있으면서, (인더스트리얼에 편향된)네오포크의 가장 훌륭한 모습에 흡사하다 생각한다. 어찌 보면 좀 더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앨범인데, 기획 자체가 너무 야심찬 탓에 기대감을 따라주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이야말로 Eliot과 이 앨범의 음악을 완전히 오독한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3.5 Stars (3.5 / 5)

 

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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