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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99: 동두천의 아픈 근현대사는 우리 모두의 역사

한 아티스트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공인된 기준이 있을 순 없겠지만, 우선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느냐가 기준의 머리에 놓이지 않을까. 자칭 타칭 수많은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눈에 띌만한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는 소수에 그친다. 좋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성실함도 필요할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이 같은 성실함까지 갖춘 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여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파격까지 더해진다면, 좋은 아티스트를 넘어 탁월한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과한 수식어는 아닐 것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면 레인보우99는 탁월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손색없는 아티스트다. 레인보우99는 데뷔 후 10년간 정규 앨범 7장을 발표하고 이보다 더 많은 앨범을 다른 뮤지션과 협업해 내놓았다. 또한, 매 정규 앨범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호평을 끌어냈으니 성실함은 증명된 셈이다. 레인보우99는 7번째 정규 앨범 [동두천]을 통해 한 도시를 음악으로 들여다보는 독특한 실험을 벌였다. 이 앨범을 통해 레인보우99는 여성 문제, 환경 문제, 인권과 평화의 문제, 접경지역 안보도시의 수난사 등 동두천의 아픈 현대사를 돌아보고 이 같은 역사가 동두천만의 것이 아니란 결론을 끌어낸다. 지난 9월 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의 한 주점에서 레인보우99를 만나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 앨범 발매 소감을 듣고 싶다.
이번 앨범은 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앨범의 기획부터 끝까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음악을 어떻게 공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시도한 텀블벅 후원을 통해 아름답게 작업이 공개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음악을 들어주고 후원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다.

이번 앨범은 동두천이란 지역을 주제로 담은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다. 이 앨범을 기획한 계기를 듣고 싶다.
처음 동두천이란 공간에 관심을 두게 계기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시사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기지촌의 역사를 살펴보고 윤금이 사건을 다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 기지촌이 국가의 관리하에 인권의 사각지대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몽키하우스’라 불리던 낙검자수용소(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소요산 입구에 여전히 폐건물로 남아있다), 수많은 무연고 기지촌 여성들이 묻혀있는 상패동 공동묘지,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보산역과 턱거리의 기지촌, 동두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부대와 부대 관련 시설처럼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들이 동두천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후 동두천이란 공간이 계속 내 머리에 맴돌았다. 동두천을 주제로 작업한 이유다.

사실 이번 앨범 외에도 다양한 지역을 주제로 음악을 만들어오지 않았나. 그중에서도 동두천을 정규 앨범으로 엮은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동두천에 직접 가보니 여긴 한 곡으로 끝낼 이야기를 가진 곳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장소들과 여전히 건재한 미군기지, 그리고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까지 하루 이틀 보고 경험해서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 년은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곡도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정규 앨범으로 이어졌다. 작업물을 정규 앨범으로 내는 게 내가 역사에 대해 할 수 있는 예의가 아닌가 생각했다.

레인보우99의 새 앨범 [동두천]의 앨범 커버

직접 경험한 동두천은 어떤 도시였나?
산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도시였다. 동두천의 절반은 여전히 미군기지의 차지이고, 중심지엔 기지촌이, 북부 지역엔 산업단지가 있어서 섬이 아니어도 섬 같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동두천에는 뭔가 폐허 같은 장소도 많았는데, 그사이에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가게나 훌륭한 식당도 많아 돌 사이에 꽃들이 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의 시민은 열심히,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동두천에서 들은 일상과 간접적인 경험이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무엇이었나?
타조를 본 일이다. 낙검자수용소로 가다가 지름길로 보이는 길로 들어갔는데, 비닐이 찢긴 비닐하우스 안에 병들어 보이는 타조 두 마리가 있었다. 놀라서 둘러보니 주변에 온통 죽은 동물들의 흔적이 있었다. 다음날 동두천 시청 환경과를 아는 동물 단체에 연락해 뒷일을 부탁했다. 많이 화가 나서 음악으로 만들었는데, 앨범엔 넣지는 못했다.

앨범마다 소리 그 자체에 천착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이번에는 소리뿐만 아니라 멜로디 면에서 서정적인 부분도 강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와 멜로디 중 어느 쪽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인가?
보통 소리나 질감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고, 이번 앨범엔 소리나 노이즈들로만 가득 채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동두천에서 1년을 보내니, 어떤 서정이 생겼다. 동두천은 분노보다 위로가 더 필요한 곳이다.

타이틀곡 ‘상패동’을 비롯해 수록곡들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싶다.
모든 곡 작업을 해당 장소에서 했다. 그 장소에서 주변의 소리를 따고, 그 소리 위에 사운드를 만들어 넣어보고, 그 위에 서정과 박자를 만들어보는 식으로 작업했다.
‘상패동’은 상패동 무연고 묘지 안 작은 공터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앉아서 작업한 곡이다. 처음 작업할 땐 가장 어두운 곡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곡이 나왔다. 앨범 완성 후 가장 놀랍게 여긴 곡이다.
‘보산역’은 동두천의 미군기지 정문과 기지촌 사이에 놓인 1호선 보산역 앞 작은 광장에 있는 편의점(지금은 없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작업한 곡이다. 날씨 좋은 금요일 저녁이면 한국인, 미군, 난민, 관광객 할 것 없이 모두가 광장에 테이블을 놓고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사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천’은 동두천시를 남북으로 가르는 하천의 이름인데. 하천 양옆으로 많은 공장이 늘어서서 연기를 뿜고 있다. 신천을 지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두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양대 옥상에서 정리해 작업했다.
‘동두천’은 시 이름의 유래가 되는 하천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동두천 대부분은 미군기지 안에 위치해 있다. 시에서 이 동두천을 볼 수 있는 곳은 턱거리(동두천시 광암동)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떠나가 흔적으로만 남은 기지촌과 아파트, 변형된 성매매 업소로 운영되는 클럽들이 무너진 모습으로 남아있다.
‘밤연기 1’은 비 오는 밤에 동두천시 신천 변의 공장을 바라보며 작업한 곡이고, ‘밤연기 2’는 동두천을 가득 메운 채 정체된 연기를 바라보며 작업한 곡입니다. 연기는 알 수 없는 냄새를 풍겼는데, 몸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턱거리 아파트’는 턱거리에 위치한 성우아파트 옆 공터에서 작업한 곡이다. 아파트가 꽤 높은 곳에 있어서 그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미군 기지와 발전소, 동두천, 민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먼저 작업한 곡인데, 그만큼 이 아파트에서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턱거리 사격장’은 턱거리 발전소 너머에 있는 미군 사격 연습장에서 작업한 곡이다. 이 사격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사격장 자체의 이미지와 턱거리라는 장소가 주는 기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곡이다. ‘초소’는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검사하고, 검사에서 낙오한 여성들을 수용해 페니실린으로 치료했던 낙검자수용소에 위치한 초소에서 작업한 곡이다. 작업은 밤에 이뤄졌는데, 때마침 싸우던 고양이 소리가 샘플링돼 묘한 느낌을 준다.
‘두드림’은 동두천시의 표어 ‘두드림’(Do Dream)에서 착안한 곡이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역사에 분노를 느꼈고, 상황에 안타까워도 하고, 모습에 슬퍼지기도 했다.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작업할 수 있었던 건 동두천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 곡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버티며 나아가고 있는 동두천의 사람들에게서 느낀 에너지와 마음에 답하는 응원가다.

이번 앨범을 제작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개인이 아닌 역사와 지역에 대한 앨범이기에 감정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멜로디 구성을 프로그래밍에 맡겨보기도 하고, 기타 녹음도 꽤 해봤는데 결국 다 빼 버렸다. 고민이 많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상패동’ 뮤직비디오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행위예술의 일종처럼 느껴지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어떻게 기획된 영상인가. 더불어 출연한 배우에 관한 설명도 해달라.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스태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상 작업을 한 배민지 감독이 무용가와 함께 작업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 감독의 기획으로 뮤직비디오 작업을 진행했다. 안무나 영상에서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안무나 영상을 만들기보다, 내 음악을 듣고 역사를 이해한 다른 예술가가 어떤 영상이나 안무를 만들어낼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상에 감동했다. 배 감독과 강다솜 무용가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집중해 들어줬으면, 혹은 이 부분만큼은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가?
조금 멀리 깔려있기는 하지만 모든 곡에 어떤 소리가 들어 있어요. 그 소리의 질감을 충분히 느끼고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역시 내 음악보다는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동두천이 더 중요하다.

다작을 하면서도 결코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 내왔다. 창작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직장이 없으니까 시간이 많다. 그래서 그런가 하고 생각합니다. 별다른 취미도 없다. 음악을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평소에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가?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엔 확실히 어떤 공간이 주는 기분이나 감정에서 작업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장소에 집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앨범은 텀블벅을 통해 제작됐다. 텀블벅 모금을 결정한 계기와 이렇게 앨범을 제작하고 난 뒤 소감을 듣고 싶다.
소속사(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가 텀블벅을 제안했다. 처음에 나는 텀블벅을 반대했는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동두천에 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 제안에 따랐다. 텀블벅이 시작된 후 악몽을 꿀 정도로 걱정만 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도와줘서 놀랐다.

2008년 앨범 [Love Is No Tomorrow]부터 따지면 음악으로 대중과 만난 지 10년이 넘지 않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16년에 발표한 앨범 [Calendar]의 첫 곡이자 여행의 시작지였던 담양에서의 기억이 가장 깊게 남아있다. 그날은 2015년 1월 1일이었는데 폭설주의보가 내려 나는 모텔에 고립됐다. 이후 모텔 창문을 열었을 때 펼쳐진 눈 덮인 대나무 숲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었는데, 풍경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최근 들어 무대 음악에도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시작하게 됐으며, 평소에 하는 음악과 어떤 점이 다른지 듣고 싶다.
알게 모르게 벌써 30편의 연극 음악을 만들어 왔더라. 이제는 나를 연극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평소 음악 작업은 공간을 보고 한다면, 연극 음악 작업은 연극 연습을 보며 한다는 차이가 있다. 연극 음악을 떠나서 연극 자체에 언제나 큰 감동을 하고, 연극인 모두를 존경한다.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연극 관련 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상인지 소개해 달라.
2019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에 출전한 ‘빨간 도깨비’란 작품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 음악으로 무대예술상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음악을 만들어오면서 받은 첫 상이라 내겐 매우 의미가 크다.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
항상 겸손하고 나아가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음악으로 더 행복해지고 싶다.

앞으로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는가.
무대가 아닌 자연이나 어떤 공간에서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

About 정진영 (25 Articles)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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