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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윤: 요즘 제가 힘을 많이 낼 수 있는 이유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져서인 것 같아요.

좋은 인터뷰란 무엇일까. 당연히 몇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인터뷰어가 준비한 양질의 질문, 인터뷰이의 진실하고 성실한 답변. 그리고 편하게 인터뷰해야 할 상황과 대화 방법 등. 물론 인터뷰어가 얼마나 정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좋은 인터뷰의 재료는 위와 같은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태윤의 인터뷰는 ‘좋은 인터뷰’의 기준을 충족했다고 본다. 핵심은 동년배로서의 공감과 교감일 것이다. [청춘 (靑春)](2019)을 만들며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그리고 청춘을 지나치면서 얻는 나이테에 관해 묻고 듣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편했다기보다,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얘기의 핵심은 단연 새 EP에 맞춰져 있지만, 내용엔 이것 말고도 담긴 게 많다. 단연 이 인터뷰가 뮤지션 태윤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 말고도 이 시대를 보내는 1980년대 생들이 조금이나마 동감(同感)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만큼 태윤은 진솔했다.

EP [청춘 (靑春)]은 시티팝이 영향이 적지 않다.
시티팝은 어느 순간부터 웹상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단어였어요. 어쨌든 저도 동시대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계속 들려오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원래 제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과 공교롭게 맞아가는 느낌이었고, 그걸 아예 의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수록곡 중에 ‘드라이브’는 시티팝의 느낌을 주고 싶었던 노래예요. 그 외의 트랙들은 그 범주에 넣고 의도해서 만들진 않았지만, EP 단위로 들어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렇다면 현재의 음악 방향은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 같다.
제 음악이 시티팝으로 묶이는 건 좋아요. ‘요즘 시대에 뭔가 어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고무적이고, 즐거운 상황인 것 같아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간 누군가 ‘어떤 음악을 하냐’고 물으면 ‘무슨 장르를 한다’고 얘길 못하겠더라고요. 다행히 시티팝이란 단어가 재조명 받았고, 그 단어 자체가 트렌드를 반영하여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묶여서 가는 게 나쁘다고 보진 않아요. 어쨌든 대중의 반응을 통해 스타일이 나온다고 보니까요.

근래 불어닥친 시티팝 열풍 자체는 어떻게 보는가.
정리하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2000년대 생이 현재 음악을 소비하는 층으로 봤을 때 ‘남들과 다른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것’ 하나와, ‘편안하게 이지 리스닝 할 수 있는 것’. 이 두 개가 맞닿으면서 열풍이 되지 않았는가. 왜냐면 너무 어려운 음악을 추천하면 거부감이 있는 반면에 시티팝은 멜로디가 주를 이루고, 편안한 음악이니까요.

반면 EP [Love Bridge](2015)는 참 간결한 편곡이었다.
개인적으로 부탁을 잘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누구한테 기타를, 건반을. 저한테는 좀 어렵더라고요. 친하게 지내는 뮤지션은 많지만, 뭔가 부탁했을 때 수정 해달라는 얘길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내가 해볼까?’ 해서 하다 보니 그 당시 역량이 거기까지였던 것이죠. 지금 보면 되게 담백하게 들리는데, 그 이유는 공간 소리를 활용할지도 몰랐고, 코드도 계속 반복되는 4개의 코드를 썼어요. 뭔가 더 하고 싶었지만, ‘노래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리했으면 좋겠다.’로 절충했죠.

매년 꾸준히 싱글을 내면서 이번 EP에 포함된 트랙이 있고, 제외한 트랙이 있다.
사라지기 아쉬웠던, 한 번 더 조명이 됐으면 하는 트랙들을 선별했고요. EP 흐름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고르기도 했어요.

조금만 더 모았다면 정규 앨범이 됐을 텐데.
정규 욕심이 있죠. 솔로를 하게 되면서 아예 시디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에 있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내고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만족 이외에는 뭐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용 부분도 있어요. 저는 지금 음악을 만들 때 비용이 안 들거든요. 이 시스템을 만든 거에 만족하고요.

다만 이번에 EP를 만들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어요. 최근에 LP를 듣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앨범 단위를 다시 듣기 시작한 거죠. 꺼내서 올려두고 30분이 지나면 뒷면을 바꾸고. 이 과정이 되게 즐거운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나도 그냥 틀어놨을 때 하나의 흐름이 되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여건이 허락한다면 내고 싶어요.

늘 태윤은 신스를 쓰고, 태윤만이 사랑하는 신스톤이 있다.
맞아요. 건반을 켜서 스케치를 할 때 제 귀에 익숙하게 꽂히는 소리가 있어요. 예를 들면 ‘신스 브라스’나 ‘일렉트로닉 피아노’. 가장 기본이 되는 소리는 일단 가져가는 편이고요. 그 이외에는 의도를 갖고 톤을 만들죠.

예전엔 포크 가수를 꿈꾼 거로 안다.
어떤 악기를 쓰냐도 중요하지만, 저에게 음악은 ‘목소리’, ‘멜로디’, ‘가사’. 이 3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머지는 저한테는 꾸며주는, 의도를 전달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는 제가 연주할 수 있던 것이 피아노와 기타 코드 정도. 그래서 목소리, 멜로디, 가사를 거기에 담았던 거고요. 지금은 달라진 거죠. 사실 음악을 시작했을 때 ‘어떤날’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 영향도 있어요. 제가 하는 음악을 들어 보시면 어떤날이 많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청춘]의 배경이 궁금하다.
첫 트랙 ‘어떤 날’은 소리를 녹음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서울대공원에서 새소리를 녹음하러 갔다가 얻은 소스 중 하나에요. 나중에 들어보니 아빠와 아이와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있는데, 그게 너무 편하고 느낌이 좋더라고요. 요즘 너무 센 느낌들이 많으니까요.

그때가 마침 앨범을 들으면서 ‘흐름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날’과 ‘청춘’의 연결은 ‘사토 히로시(さとう ひろし)’의 [awakening](1982)에서 영향을 받게 됐어요. 그 앨범의 첫 트랙이 파도 소리가 들려주다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신시사이저가 나오면서 2번 트랙으로 넘어가거든요. ‘청춘’만 듣는 것보다 ‘어떤 날’과 함께 이어서 듣는 게 감상하시는 데 더 좋을 거예요.

이번 EP에서 노랫말의 초점은 주로 어디에 맞췄는가.
제가 살면서 겪은 사소한 이야기들이요.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걸 쓰는 건 어렵더라고요. 나름대로 가사에 신경 쓰고 싶으니까요.

현재 본인의 보컬 소화력은 만족하는 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다 보니,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요. 게다가 집에서 녹음하다 보니 특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기가 어렵거든요. 노래할 때 위아래를 신경 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게 나갈 수 있는데, 움츠러들면서 ‘톤이 나오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아주 현실적인 고민이죠.

이번 커버가 인상적이다.
아내가 홍콩으로 출장 가서 찍어온 거예요. 제가 음악 이외에는 잘 모르다 보니 재킷을 부탁하게 됐고, 싱글 ‘나의 마음’부터 그녀가 찍은 사진을 쓰게 됐어요. 그 친구가 워낙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감각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EP는 본인이 먼저 제시하더라고요. 그래서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뭔가 청춘에 어울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EP를 만들 때 커버를 보고 영향 받은 것도 있어요. 알고 보니 홍콩의 명소더라고요.

마케팅에서 아쉬운 부분은?
항상 고민이에요. 혼자 다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이 음악을 좀 더 들려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건 전문 분야가 있으니까. 가장 큰 고민이죠.

작업 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요즘엔 아예 스케줄을 잡아놔요. 유통사에 ‘싱글을 몇 월에 내겠다.’라고 얘기해서 그 일정에 다 맞춰서 하고 있어요. 그래서 때론 어떤 트랙은 조금 아쉬울 때도 있어요.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해서요. 반대로 어떤 곡은 여유를 가지고 만들다 보니 완성도가 만족스러운 트랙도 있죠. 그렇게 하는 이유는, 스케줄 잡아 놓지 않으면 작업이 안 되더라고요. 예전엔 일 년에 한 곡 내거나, 텀이 생기곤 했거든요. 곡을 많이 낼 수 있었던 건 스케줄을 미리 잡아 놓은 덕분이에요.

현 작업 방식에 확장을 고민하는가.
서로 교류하면서 나오는 시너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열려 있고, 항상 생각하지만,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 하고 싶은, 그런 접근이 좋다고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 제 음악에서 기타가 좀 있으면 좋겠어요.

결혼 전과 결혼 후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면서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음악 이외에 현실적인 삶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현재는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하면서 삶이 비교적 변수가 없고 안정적으로 되니까. 음악 하는 것에는 도움이 더 돼요.

반복적인 삶으로 인해 영감받는 부분에 제한이 있지 않은가?
다행히 아직까지는요. 노력을 많이 해요. 삶에 작은 이벤트를 많이 만들죠. 거창한 게 아니라 술 한 잔하고, 어디 걷고. 작은 것에도 큰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요즘 제가 힘을 많이 낼 수 있는 이유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져서인 것 같아요.

활동명에서 불편한 점은 없나. 태윤이란 이름의 동명인이 많다.
불편해요. 섣불리 결정했다는 생각을 엄청 했어요.(웃음) 솔로명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특별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더라고요. 검색 시 이름 하나만 나오는 걸 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전략적이지 못했어요. ‘태윤’을 정해놓고 보니 제 전에도 많았지만, 그 이후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바꾸기엔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왠지 바꾸면 다시 시작하는 느낌일 것 같아서요.

현재 팀 ‘클럽 505’는 어떻게 된 건가.
일단 제가 멤버 정식(유정식) 형을 되게 좋아해요. 왜냐면, 스무 살 때 처음 정식 형을 알게 됐는데, 형이 저에게 아메리카노를 알려줬고, 음악적으로 뭔가 만나면 매번 밥을 사 주셨고, 당시 세련된 문화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저는 음악을 떠나서 사람으로서 너무 좋아하고 형이고, 인간적으로 너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건 몰랐어요. 솔로 앨범 [유정식의 골든베스트 Vol.1](2015)을 들었는데, 형이 유머와 위트가 있는 음악을 했더라고요. 팀이라는 건 서로 절충안을 마련하면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는데, ‘정식 형이 이런 음악을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클럽 505’로써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에요. 좋은 기회가 된다면 저는 언제든 하고 싶어요. 인간적으로 멤버 가은(박가은)이까지 셋이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무대에서 태윤을 못 보고 있다.
공연하고 싶어요. 그런데 만든 음악을 공연으로 구현하는 게 몇 배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섭외해서 꾸려나가야 하니까요. 이런 부분에서 어찌 보면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졌던 것 같아요. ’MR 트는 건 오케이. 그런데 드럼이나 베이스는? 기타는?’ 이런 걸 고민하다가 ‘아 그냥 혼자 해야겠다.’ 했거든요.

요즘은 혼자들 하니까 그렇게 가야 할 것 같아요. 옛날엔 공연하면 다 있어야 했지만, 음악 장비가 바뀌면서 혼자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이 부분은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합창 대회를 했어요. 그때 친한 친구가 피아노를 잘 쳤는데, 본인이 지휘해야 하니 저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라는 거예요. 피아노는 누구나 초등학교 때 해봤지만 다 까먹잖아요. 그래서 ‘나는 모르는데?’ 하니 걔가 코드 반주 4개를 알려준 거예요. 그래서 쳤어요.

그전에 저는 사람이 많은 데서 앞에 나가면 긴장하는 그런 타입이었는데, 연주를 하니 너무 즐거운 거예요. 그날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말씀드렸어요. 좋은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보드가 갖고 싶다고. 어머니가 들으시더니 다음 날 낙원상가에 데려가시더니 키보드를 하나 사주셨어요. 그걸로 전 다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걸로 음악을 시작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제가 키보드가 있다는 이유로 밴드를 같이 하게 된 거예요. 당시 밴드 하던 애들이 노래를 모두 다 잘했어요. 그런 친구들 덕분에 노래할 생각은 없었지만, 옆에서 들으니까 같이 하게 됐죠. 전 그전까지 뭘 하고 싶은 게 없었는데, ‘어? 재밌네.’ 라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으로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정식 형을 만나게 되면서 더 할 수 있게 됐고요. ‘즐겁다’. ‘재밌네’.로 끝날 수 있었지만, 형을 만나게 되면서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게 된 거죠.

건반을 사주신 어머님의 반응은 어떤가.
저희 어머니는 한 번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언급을 하신 적이 없어요. 무조건 ‘네가 행복하면 된다.’라고 얘기하셨어요.

뮤지션으로서 절대적으로 영향받은 앨범과 아티스트를 알려 달라.
‘어떤날’과 [어떤날 I 1960ㆍ1965](1986), [어떤날II](1989)이요. 음악을 가장 흡수하는 나이에 들어서인 거 같기도 해요. 많은 것의 지표가 됐어요.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 때부터 듣기 시작해서, 계속 곱씹을수록. 최근 ‘덧없는 계절’을 들으면 가사가 다시 들리더라고요. 제 음악의 기조, 멜로디나 가사 같은 것들은 어떤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About 이종민 (67 Articles)
음악 글쓰는 건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쓰고 있다. 50년 배우면 50년 써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강레오 쉐프가 한 말 인용했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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